• 입력 2023.12.27 00:00

민간기업인데도 거의 군대처럼 운영
'컴퓨터 망분리' 직원들 지치게 만들어

엄효식 마편 대표. (사진제공=엄효식 대표)
엄효식 마편 대표. (사진제공=엄효식 대표)

2023년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약 130억 달러의 수출계약을 달성했다. 지난 2022년의 170억 달러보다 다소 줄었지만, 세계 방산시장의 치열함을 고려한다면 글로벌 10위권의 실적을 연이어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찬사받기에 충분하다.

국방부와 기업들은 ‘2024년 수출계약 200억 달러’라는 도전적 목표를 제시하고 원 팀(One-Team)으로서 새해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방위산업이 지속적인 국내성장과 해외수출 계약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우수한 전문인력 즉 연구와 기술인력들이 방산기업으로 몰려와야 한다. 사업이건 수출이건 결국 사람이 수행하는 업무이자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첫 진출을 하는 청춘들에게 방산기업은 선호되는 직장일까.

12월초 2023 방산정책 심포지엄이 창원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서 김호성 국립창원대 교수가 방산전문인력 유지에 대해 발제한 내용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김 교수는 방산업계 종사자 100여명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 R&D인력들이 방산기업을 떠나고 싶어하는 여러 요인들을 제시했다. 필자가 과거 방산기업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미뤄볼 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방산기업 직원들은 자신들의 업무의욕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첫째, 방산기업은 민간기업인데, 운영시스템은 거의 군대와 비슷하다. 수직적 관계가 당연시되는 업무환경은 개인의 창의력과 열정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안분야일 것이다.

보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당연하지만, 일정 부분 과도하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진짜 보안이 필요한 부서와 대상 인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전직원 대상으로 획일적인 적용을 강조하다보니 통제와 감시를 받는다는 피해인식은 늘어나고 업무의욕마저 감퇴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괴팍한 아이디어로 이전에 없던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근무환경인데, 그게 충족되지 못할 경우 출근후 시간은 관행에 적응하거나 기계적 행정업무에 치중하게되어 회의감(懷疑感)으로 다가올 수있다.

둘째, 24시간 손 끝에 붙어지내는 휴대폰과 인터넷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업무환경이다. 

회사 출근시 게이트를 통과하면 휴대폰의 보안앱이 자동으로 작동하고 휴대폰의 일부 기능들은 정지된다. 

특히 컴퓨터의 망분리는 직원들을 지치게하는 대표적인 이슈이다. 책상 위의 컴퓨터는 회사 업무용과 인터넷용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데, 인터넷의 업무정보나 자료를 찾아서 공유하려면 수차례 결재를 받아야 하고 마우스를 반복적으로 클릭해야만 한다. 물론 일반기업에서는 전혀 거치지 않아도 되는 과정이다.

셋째, 요즘 직장인들이 매우 중요시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 차원에서 부족함이 많은 것이다. 

직장의 행정구역상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젊은 직장인은 경기도 판교 이남으로 가길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방산기업의 사업장들은 창원이나 구미, 안강, 사천 등에 있다보니 자신과 가족이 지향하는 생활스타일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잦은 전방부대 출장, 야전부대 또는 격오지에서 주로 진행되는 시험평가에도 연구원들이 동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과 헤어짐은 물론 불가피하게 얽매인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넷째, 방산기업에 근무하다보면 '을’로서의 삶이 익숙해진다. 자칫 존재감마저 잃는 기간이 된다는 말도 나온다.

방위산업은 국방부와 방사청의 주도 아래 움직인다. 이로 인해 대부분 ‘갑’이 아닌 ‘을’이라는 위치에서 업무를 하게 된다. 만약 실패를 하게되면 그에 대해 가혹한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지나치게 복잡한 무기체계 사업절차는 내부적으로 쌓아두었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존재감이 관료적인 조직과 지루한 업무프로세스를 거치면서 스스로 증발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네가지 고민사항들은 대부분 방산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물론 급여와 복지분야에서도 아쉬움이 많지만, 그런 부분은 방위산업에 헌신하고 있다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있으며, 수출 증가를 통한 영업이익이 높아지면 언젠가 합당한 보상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수한 연구인력이 방산기업에 뿌리를 내리고 지속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게 최선이지만,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유입 통로가 있어야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유용한 방법은 유사 분야에서 근무했던 군 관계자 또는 ADD(국방과학연구소)연구원들을 채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직자가 퇴직후 자신이 담당하거나 관련된 사업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퇴직후 3년 동안은 ‘공직자 윤리법’에 의하여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물론 인사혁신처 취업심사를 통과하면 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세계 최대 방산강국인 미국의 군인들은 전역 즉시 방산기업 취업이 가능하다. 2017년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샴포우(Bernard S. Champoux) 장군은 한국에서 전역한 뒤 바로 한화그룹 방산부문 부사장으로 취업했고 5년 이상 국내와 미국에서 한화그룹을 위하여 방산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김호성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이나 폴란드 등 대부분의 국가들도 현역장교들의 방산기업 취업제한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는 2010년대 초반 ‘방산비리’라는 비극적 경험에 따른 트라우마가 크다보니 취업제한 제도를 변경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대안으로 논의할 수있는 게 있긴 하다. 취업제한은 대략 중령급 이상부터 적용된다. 소령 이하 계급 시절 방산기업에서 공개적으로 채용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장교들의 취업 혜택과 기업들의 우수인력 확보라는 상생(WIN-WIN) 전략이 가능해보인다. 방산기업 경영진들의 결심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고, 국방부와 방사청과 협의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방산기업들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들어가보면 ‘탈방’(脫防)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방산기업으로부터 탈출을 뜻하는 단어다. 그만큼 방산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어렵고 고민스러워서 타업종으로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아이디어와 연구가 보장되고, 수평적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급여와 복지가 제공되고, 국방부와 군으로부터 존중받는 방산기업. MZ세대는 이같은 방산기업에 입사, 청춘과 열정을 바쳐 오래도록 머물며 일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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