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2.12 10:07

나에게는 지금의 '나'로 살아가게 해주신 몇 분의 선생님이 계신다. 학생 때 처음으로 미술사를 가르쳐주셨고 책과 그림을 직접 권해주셨던 J선생님과 실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여러 권의 책과 기사, 페이스북의 글을 통해 배움을 나누어 주신 L선생님, 눈물 가득한 혁명가였던 윤동주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시는 K선생님 등등… 

한 번이라도 더 선생님의 눈에 띄기 위해 시간을 다투어 강의를 신청하고,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필기했으며, 강의가 끝난 후에도 멀리서 빙빙 맴돌았다. 감사하게도 대개의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반갑게 받아들여 주셨다.

선생님들을 흠모하는 학생을 생각하면 스승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조희룡이 생각난다. 스승 김정희를 지극히 사모하였던 매화 광인 조희룡. 그는 진심으로 스승을 존경하였고 김정희의 섭섭한 평가에도 사모함을 끝내 그치지 않았던 겸손하고 충직한 사람이었다. 조희룡이 그린 ‘매화서옥도 相花書星圖 ’는 내가 가장 매혹되었던 동양화의 그림이다.

조희룡 <매화서옥도 相花書屋圖> 지본 채색 總本科多色, 454cm×1060cm 간송미술관 소장

우봉 조희룡(又峯 趙熙龍, 1789~1866)은 조선 말기의 서화가로서 시, 서, 화 (詩, 書, 畫)에 모두 능한 삼절(三絶)이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이자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노론 북학파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을 가장 흠모한 조희룡은 곧 그의 충실한 사람이 되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얽힌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희의 유배 생활 가운데 충정을 지킨 제자가 한둘은 아니었겠지만 ‘세한도’의 수신자인 제자 이상적 뿐 아니라 조희룡도 높은 충정을 지켰다. 심지어 조희룡은 김정희의 가장 가까운 이로 연좌되어 1851년에 신안에서 삼 년간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조희룡은 비록 중인 출신이었으나 그의 태도는 ‘선비 중의 선비’였다. 그는 사군자 중에 매화와 난초를 잘 그렸다. 그중에서도 '매화'하나만큼은 광인처럼 좋아했다. 그런 그가 매화의 신비로움을 작품으로 남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매화서옥도’나 ‘홍매대련’ 등의 매화 걸작이다.

그러나 김정희는 제자가 그린 '걸작'들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 '문자향(文字香, 문자의 향기)과 서권기(書券氣,서책의 기운)'가 조희룡의 그림에는 없다며 그의 그림에 지성의 품격이 덜함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조희룡은 그 질책을 공손히 받아들이면서도 조심스레 본인의 화론을 정립해간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거대한 매화나무가 집을 덮듯이 꿈틀거리고 있다. 검은 먹의 강한 번짐으로 만들어진 농담 가운데 백색의 물감이 점점이 리듬감 있게 찍혀 있다. 바위가 가득한 매화의 장소에 작은 집 하나가 숨어 있듯 세워져 있다. 이 집의 둥근 창문은 유난히도 크고 그 가운데 한 선비가 화병에 꽂힌 매화 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집 안과 밖은 그저 가득한 매화로 연결되어 있다. 이 매화가 흐드러진 공간에서 선비 하나는 매화와 하나가 되어 있다.

조희룡의 ‘매화서옥도’에서 보이는 특징은 이전의 단정하고 절제된 매화도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화려하고 풍성한 아름다움의 매화 스타일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붓끝으로 둥글게 댓 개의 꽃잎만 쳐 내고 약한 농담으로 쳐 내어 여백의 공간감을 강조하던 매화 그림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무한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종이 그 자체의 여백은 최소한을 차지하고 있다. 그보다는 매화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승 김정희도 매화도 조희룡에게는 일방향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주었던 사랑만큼은 늘 받을 수 없어 슬펐던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조희룡은 스승의 글씨를 쓰고 그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행하였다. 고결한 매화를 사랑하고 닮고 싶어 항상 곁에 머물렀다. 높은 곳에 머문 대상을 끝없이 흠모했을 때 조희룡의 삶은 다른 높은 경지로 떠오른다. 조희룡은 조선 문인화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의 수예(手藝)정신은 김정희가 강조했던 정신성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세계였다. 후대에 이르러 조희룡은 감각적인 풍취를 가진 문인화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조희룡만큼 매화를 닮은 사람을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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