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3.20 09:21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의 스마트폰에는 특별한 종류의 앱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미세먼지 앱'이다. 2012년부터 미세먼지가 증가세라는 소리가 슬슬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누구라도 '침묵의 살인자'라는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게 되었다. 

잠시 잠깐 봄날에만 황사와 꽃가루만 견디면 되었던 과거는 언제였나. 사시사철 미세먼지에 짜증과 불안을 참아야 한다. 이제는 야외활동에 마스크는 필수다. 마스크는 꼭 일회용으로 사용하라든지, 마스크의 넓은 주름 방향이 위로 가게 착용해야 한다든지 하는 정보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신상 옷이나 구두 뿐 아니라 신상 마스크도 이슈다. 요즘 여자분들에게는 얼굴 곡선에 밀착하고 입 근처에 공간이 있어 입술 화장이 번지지 않는다는 모 브랜드 마스크가 인기다. 그리하여 이 날씨 좋은 봄날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되었다.

어디 길거리에서뿐인가. 집에서도 환기가 필요한데 문을 열어야 하나 닫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 애매한 부분을 정리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미세먼지의 유해성과 환기의 유용성을 고려해야 하다니 이건 뭔가. 이 화창한 봄날에 창문을 열 수 없는 슬픔이라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레온 비촐코브스키(Leon Wyczółkowskii)의 환상적인 그림 ‘봄(Spring)’을 전하고 싶다. 이 놀라운 봄날의 바람과 거기 스민 빛은 놀랍고도 또 놀라워서 형언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Leon Wycz&#243;łkowskii <Spring> 1931

 

폴란드의 화가 레온 비촐코브스키 (Leon Wyczółkowskii, 1852~1936)는 그림에도 조각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졌던 작가로, 특히 당대 상업 프린팅의 주류를 차지했던 리도그래피(lithography, 석판화) 기술이 뛰어나 그래픽 아티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화가는 열일곱 나이인 1869년부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드로잉 레슨을 받았으며 1877년부터는 크라쿠프 미술 학교에서 공부했다. 훌륭한 학생은 훌륭한 교사로 성장한다. 비촐코브스키는 이후 크라쿠프 미술 아카데미의 교사가 되고, 교직 경력은 계속 이어져 바르샤바 스쿨 오브 파인 아트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비촐코브스키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빛과 색이었다. 화가는 특히 조명 효과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고민했는데, 실내보다 자연광을 다루는 데에서 화가의 실력이 두드러진다. 그는 역시 1889년에 파리를 방문했으며 이때 인상주의의 물결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 때문일까, 1900년을 기점으로 비촐코브스키의 시선은 확연히 달라진다. 

기존에 그렸던 낭만적이고 역사적인 주제의 작품에서 변화해, 소소한 풍경과 꽃 같은 정물, 주변 인물에 대한 애정 어린 감정을 담은 그림으로 화폭을 채워간다. 삶에서 드러나는 진실인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화가가 결국 발견하게 된 것이 '빛'이라니 의미심장하다. 풍부한 형태와 자유로운 붓질이 아름다운 그림 ‘봄’ 역시 그런 애정과 빛나는 색채를 담은 작품이다.

노란 빛이 충만한 그림은 하루의 마지막 빛을 뿜어내는 저녁 무렵 같다. 화면 왼쪽의 시계는 알려준다. 지금은 저녁 여섯 시 이십 분 정도라고. 커다란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바람은 빛을 안고 날아들어온다. 흰 커튼 한 쪽은 창문 뒤로 고정되어 있지만 바람 덕에 자유로워진 다른 쪽 커튼은 노란 빛을 품고 춤춘다. 누군가는 활짝 열린 창문 앞에서 바람과 빛을 안으며 책을 읽다가 일어났다. 한번 앉으면 푹 빠져들어 쉴 수 있을 듯한 낮은 의자가 매력적이다. 액자와 장식품 등의 소품은 주인의 소박한 취향을 알려준다. 평범한 한 명의 생활인이 봄을 충전하고 일어선 후의 장면이다.

삶은 늘 장애물과의 싸움이다.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같은 것들이 도처에서 나를 괴롭힌다. 피할 수 있는 장애물은 피하고,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은 치우고, 감당할 수 없는 장애물은 돌아가다 보면 수이 지치고 수이 쓸쓸해진다. 우리는 모두 팍팍한 매일을 감당하고 있다. 이 험난한 시절 내가 이 시대에 가장 부족한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정함'인데,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레온 비촐코브스키의 ‘봄’만한 그림은 없는 것 같다. 활짝 열린 창문이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고, 충만한 봄바람이 쓸쓸함을 채우고, 따뜻한 봄빛이 지친 육신을 데운다.

못돼먹은 미세먼지와 따뜻한 봄빛이 공존하는 시절이다. 작고 큰 장애물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다정함만큼은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마다에게 허락된 순간에 창문을 활짝 열자. 집의 창문이 어렵다면 마음의 창문도 좋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다정을 반가워하자. 미세먼지의 두려움은 쳐내고 다정만 끌어안자. 봄은 짧고 다정함만 거두기에도 시간은 벅차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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