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4.04 16:01

주주이익 위해 '실력행사' 엄포...세부 중장기계획 내놔라

<그래픽=뉴스웍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2년전 삼성전자를 공격했던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번엔 현대자동차그룹을 정조준했다. 엘리엇은 계열사 지분을 1조원 이상 확보했다며 주주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달라고 현대차그룹을 압박했다.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며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했던 엘리엇이 현대모비스의 인적분할도 제동을 걸게 될 지 관심이 쏠린다.

엘리엇은 3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내고 “10억달러(1조500억원) 이상의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지분을 사들였다”며 “현대차는 회사와 주주이익을 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선과 재무상태 최적화, 자본수익률 향상 등에 대한 상세한 로드맵을 제시해야한다는 게 엘리엇의 요구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28일 지배회사 체제를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지주사로 전환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대주주가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오는 7월 말까지 기아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알려졌다. 약 4조5000억원 규모의 지분거래를 마치면 현대차그룹은 기존 4개의 순환출자고리를 모두 끊게 된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방안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부적인 중장기 계획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이번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수단”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현대차 노조는 3일 소식지를 통해 “정몽구 부자의 3대 세습과 사익추구로 귀결되는 이번 지배구조 개선안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정부 당국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개편 시나리오에 강력히 대처하고 규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 반기를 들면서 국내에 알려진 ‘행동주의’ 펀드회사다. 당시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주식 0.35주와 삼성물산 주식 1주를 교환하는 합병에 문제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합병을 반대하는 입장이 관철되지 않자 외국계 주주들과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법원이 최종적으로 삼성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당시 삼성의 경영활동은 마비상태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혹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지분율은 2%도 되지 않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정 회장 등 총수일가가 가진 현대모비스 우호지분은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외국인 지분율은 50%에 육박하기 때문에 삼성 사례처럼 외국인 주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주총 표대결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안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인적 분할이 주총에서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은 국민연금의 선택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모비스의 9.8%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몸살을 앓았던 만큼 이번엔 신중하게 의결권을 행사할 것으로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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