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2.24 11:41
중국 복건 출신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주해 최대 화교기업 Salim Group을 창업한 Liem Sioe Liong(林紹良). 활발한 비즈니스 역량으로 동남아를 개척한 화교 재벌들의 상당수는 복건 출신이다.

1986년 1월은 대만 정치대학교 중국문학 석사과정에서 수학하고 있을 때였다. 리포트에 참고할 자료 구입 차 많은 선배들이 홍콩에 다녀왔던 까닭에 나도 홍콩에 간 적이 있다. 지금은 중국 자료들을 여기저기서 구하기가 쉽지만 당시로서는 직접 중국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홍콩에서 자료를 구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침 홍콩에 잘 아는 친구가 있어서 그 집에 같이 머물기로 했다. 홍콩에 가서 자료를 구입하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얼핏 보기에 빌딩 외벽에 뭔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빌딩이었다. Lippo Centre라고 했다.

이제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처음 홍콩 왔을 때 봤던 인상 깊은 빌딩은 그대로 있다. 단지 독특한 별명인 ‘코알라 빌딩’이란 명칭을 하나 더 얻었을 뿐이다. 오늘은 코알라가 붙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Lippo Centre에 얽힌 華商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012년 6월 10일 Sudono Salim 또는 Liem Sioe Liong, 중국어로는 林紹良(임소량)이라 불리우는 96세 된 한 노인이 싱가포르 Raffles Hospital에서 조용히 생을 마쳤다. 1916년 중국 복건성 복주시 복청현 해구진 우택촌(福建省福州市福清縣海口鎮牛宅村) 평범한 농부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22세가 되던 해인 1938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 북쪽 메단(Medan)으로 이주했다.

초창기 땅콩기름(Peanut oil) 사업을 필두로 담배에 들어가는 정향(丁香)을 취급하면서 사업이 번창했다. 그는 메단에서 당시 국가 혁명군의 장교였던 수하르토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수하르토와의 연분으로 당시 국민 혁명군에 의약품 및 기타 군수품 등 물자를 공급하면서 두터워진 교분으로 후에 비누와 시멘트, 밀가루 및 부동산 그리고 금융업에도 진출한다. 또한 사업 무대도 인도네시아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로 넓힌다.

그를 지칭하는 말이 여럿이다. 정향대왕(丁香大王), 밀가루 대왕, 시멘트 대왕, 금융대왕 등 이다. 1950년대에 인도네시아 최대 사립은행인 Bank Central Asia를 설립했고, 밀가루를 가장 많이 생산해 나중 Indofood라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라면회사를 세웠으며, 인도네시아 최대 시멘트 공장인 Indocement를 만든 덕분이다. 그런 기세를 몰아 그는 .Indofood 및 Indocement indomobile 등을 기반으로 인도네시아 2대 그룹인 Salim Group을 설립한다.

이 그룹의 2014년 연간 매출은 132억 달러에 달했다. 1980년대 말에는 인도네시아 화교인 李文正(이문정)과 함께 부동산과 병원, 호텔 및 유통 등을 기반으로 하는 Lippo Group를 설립한다. 2015년 현재 Lippo group은 인도네시아 6대 그룹으로서 자산이 200억 달러가 넘는다.

비록 IMF 위기 때 인도네시아 내 반(反) 화교 시위가 격화하면서 수하르토가 물러나자 그는 Salim Group의 주력인 Indocement 와 BCA등을 타 업체에 넘기고 싱가포르로 이주하지만 나머지 회사들은 자식들이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다. Indofood는 아직 인도네시아 최대의 라면 기업이다.

그는 1997년 이전 아시아 최대 부호의 명성을 유지했었으며 Joe Studwell이 <Asian God Father>란 저서에서 리카싱(李嘉誠)과 함께 아시아를 움직이는 ‘God Father’로 거론키도 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도 복주(福州)시 서기 시절인 1991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를 초청해 현대식 항구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논의한 적이 있다.

그는 앞에서 소개했듯이 중국 복건(福建)이 고향이다. 이곳 출생의 상인들을 흔히들 ‘복건상방(福建商幫)’으로 적는다. 이들은 대개 세 그룹으로 다시 나뉜다. 우선 복건 남부에 터전을 두고 해상무역을 위주로 형성된 민남상방(閩南商幫)이다. 또 종이, 나무, 기름, 차 등을 취급하는 복주상방(福州商幫)에 설탕, 담배, 면화 및 은행업과 운수업을 위주로 하는 흥화상방(興化商幫)이 있다. 흥화는 때로 보선(莆仙)으로도 적는다.

이들은 우선 매우 신중하다. 아울러 항상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무엇보다 명분에 치중하는 스타일을 보인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들을 보자. “三分天注定,七分靠打拼”(30프로가 운이라면 70프로는 노력이다) “, ”輸人不輸陣,輸陣番薯面(사람에게 질지언정. 책략에서는 지지 않는다. 책략에서 지면 고구마 얼굴이 된다)”, “爭氣不爭財(명분을 다투지 재물을 다투지 않는다)”, “神仙難賺莆仙錢”(신선마저도 보선사람들의 돈을 벌기 힘들다)“등이다.

돈을 벌면 이들은 그를 한 곳에 쌓아두지 않는다. 주변 사업으로의 새 영역 확대에 보다 신경을 쓰며 가능한 시장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들 출신들이 많이 정착한 동남아에서는 ‘OO대왕’ 'XX대왕‘이라는 식의 별칭을 많이 얻었다. 예를 들면 “木材大王李清泉(목재대왕 이청천: 1888년생 필리핀 이주)” 식이다.

‘糖業大王(설탕대왕)’의 호칭을 얻은 黃仲涵(황중함: 1866년생 인도네시아 화교), ‘萬金油大王(만금유대왕)’과 ‘報業巨子(신문업계 거두)’의 이름을 얻은 胡文虎(호문호: 1882년생 미얀마 랑군 화교), ‘汽車大王(자동차대왕)’ 謝建隆(사건륭: 1922년생 인도네시아 화교 Astra그룹 설립자) 등도 있다.

또 있다. ‘地皮大王(부동산 대왕)’ 黃廷芳(황정방: 1929년생 홍콩 SINO그룹 설립자), “橡膠與黃梨大王(고무와 배 대왕)‘ 李光前(이광전: 1893년생 싱가포르 이주), ’食用油大王(식용유 대왕)‘과 ’紙業大王(종이업 대왕)‘의 타이틀을 얻은 黃奕聰(황익총: 1923년생 인도네시아로 이주), ’銀行大王(은행 대왕)‘ ’煙草大王(담배 대왕)‘ ’啤酒大王(맥주 대왕)‘의 陳永栽(진영재: 1934년생 필리핀으로 이주) 등도 있다.

복건상인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충성심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광동(廣東)의 복판을 형성하는 廣府文化(광부문화) 출신들이 주로 홍콩에 몰려 있다고 한다면 이 복건상인들은 싱가포르(전체 화인들의 41%)와 대만(전체 인구의 70%)에 몰려 있다.

중국어 표현으로 이들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求實變通的精神(내실을 기하면서도 변통할 줄 아는 정신), 借勢拓展(세에 올라타 외연을 넓히다) 등이다. 그런 내밀하면서도 활동적인 성향으로 인해 그들은 세계 각지에 아주 두텁고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들의 세계화, 현지화는 ‘Asian GodFather’의 별칭에 걸맞게 왕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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