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19.07.16 10:52

고대의대 구로병원 수부외과센터 정성호 교수

손목에도 ‘터널’이 있다. 뼈와 인대로 둘러싸여 있는 일종의 통로다. 의학적 용어로는 수근관(手筋管). 그렇다면 이 터널은 왜 존재할까.

이 통로를 통해 손가락을 구부리는 9개의 힘줄과 손의 바닥쪽 감각, 그리고 엄지손가락의 일부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정중신경이 지나간다. 말하자면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든 손동작이 이 터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하는 터널에도 약점이 있다. 조물주가 이 통로를 너무 좁게 만든 것이다. 이 터널 안에는 힘줄과 신경 등 10개의 구조물이 밀집해 있다. 따라서 손가락을 많이 사용하면 터널 속의 9개 힘줄이 과도하게 움직여 염증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터널이 부어오르며 좁아진다. 결국 신경이 눌리면서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이른바 ‘손목터널증후군’이다.

손목터널증후군의 취약계층은 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주방에서 일하는 조리사나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 공구를 이용해 수작업을 하는 기술자, 걸레질과 빨래를 많이 하는 어머니들이다.

우리나라 환자들의 특징은 병원을 늦게 찾는다는 것이다. 초기 증상이 견딜만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집안일 또는 운전 등 손을 사용하고 난 뒤 저린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손이 저리다고 혈액순환 개선제를 복용하거나 온찜질을 하기도 한다. 손저림을 혈액순환장애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액순환장애로 인한 손저림은 다섯 손가락과 팔이 모두 저리는 특징을 갖는다. 또 손끝부터 시린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반면 손목터널증후군은 엄지손가락부터 네 번째 손가락 절반부분까지 저리다. 또 손바닥 쪽도 매우 저려 바닥을 짚기 불편할 정도다.

증상이 악화되면 일을 하지 않아도 저림증이 나타나며, 엄지손가락의 힘까지 약화된다. 심지어 단추 채우기, 전화기 잡기, 방문 열기 등도 불편해진다. 밤에 손이 저려 잠을 자다 깨는 상황도 발생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방치를 하면 엄지손가락의 운동 기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적당한 시기에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다.

손목터널증후군의 진단에는 감각이상의 위치와 정도를 파악하는 문진, 그리고 손바닥 근육의 기능저하 정도를 살펴보는 근전도 검사 등이 있다.

손목터널증후군 초기에는 터널내 염증 완화를 통해 부기를 줄여주는 치료를 한다. 이를 위해 염증 감소를 위한 소염제 투여, 그리고 터널 내 스테로이드 주입, 손가락 힘줄의 이동 제한을 위한 부목 고정, 부기 조절을 위한 온찜질 등을 권한다.

그러나 이 같은 치료에도 반응이 없고 지속적으로 저림증을 호소하거나 엄지손가락 기능이 약해지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은 손목터널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물인 ‘가로손목인대(횡수근인대)’라는 조직을 열어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터널을 확장하는 수술이다. 부분마취 하에 한 손을 수술하는데 대략 10분 가량 소요된다. 손바닥을 2㎝정도 절개하므로 흉터는 거의 없다. 1주일 정도 부목을 이용해 손목을 고정하고, 이후에는 손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손저림 역시 다른 질병처럼 조기진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년간 방치하다 엄지손가락까지 사용하지 못 하고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따라서 손저림이 반복된다고 생각되면 수부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함께 치료를 받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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