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11 16:13
100년 전에 만들어져 동남아, 대만, 일본, 한국 등 지역에 숱하게 팔려나갔던 '호랑이표 만금유'다. 우리에겐 '호랑이 기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모기에 물린 데, 감기 기운 방지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한 때 인기가 높은 제품이었다.

이 번 주 한국에서 가장 큰 화제를 낳았던 일은 인공지능의 알파고와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한국 이세돌의 바둑 승부였다. 구글 알파벳(alphabet)의 CEO인 에릭 슈미트(Eric Schmidt)와 구글 딥 마인드(Google deep mind) 의 CEO인 데니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회장도 알파고를 응원하러 방한했다.

BBC는 이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제 아무리 첨단의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가 매우 복잡하게 얽히는 바둑이라는 게임에서는 알파고가 세계적인 고수 이세돌을 꺾을 수 없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애초 예상보다 다윗의 힘이 아주 강했다.

1991년 중국 광동(廣東)에서 냉차 업계의 ‘다윗’ 왕라오지(王老吉)라는 제품이 전 세계 탄산음료의 ‘골리앗’인 코카 콜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2013년 중국내에서 골리앗을 무너뜨렸고, 2016년 1월에는 골리앗의 터전인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 광고를 올렸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일에 그치지 않고 골리앗의 진영에 걸어 들어와 대결신청까지 한 모양새다.

1813년 광동(廣東) 학산(鶴山)에서 태어난 왕택방(王澤邦)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자기 동네에 역병이 돌아 산으로 피신한 적이 있었다. 몸을 피했던 산에서 그는 우연히 한 도인을 만난다. 아울러 그로부터 역병을 고칠 수 있는 한약 제조 비법을 받는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처방대로 약을 지어서 많은 백성을 역병으로부터 구했다고 한다.

청나라 문종(文宗) 함풍(咸豊) 2년(1852년) 광동 일대에 역병이 도진 일이 있다. 이 때 왕택방이 처방한 냉차(涼茶)를 마시고 사람들이 역병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함풍황제는 왕택방을 직접 불러 냉차를 만들게 한 뒤 각 관료들에게 이를 마시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1853년 왕택방은 태사령에 봉해졌고 황제로부터 500량의 은(銀)을 하사받았다. 이후 왕택방은 광주(廣州)로 돌아와 왕라우지 냉차 가게(王老吉涼茶鋪)를 열고 자신의 처방으로 만든 냉차를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냉차와 관련된 이야기는 제법 많다. 아편을 불태움으로써 영국과의 아편전쟁을 촉발했던 청나라 대신 임칙서(林則徐)가 광동으로 부임할 때 이야기다. 임칙서는 당시 과로(過勞)와 풍토병으로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그의 시중들이 광주 13행 근처에 있던 왕라우지(王老吉)의 냉차가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이를 가져와 바쳤다.

이 냉차를 마신 임칙서는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임칙서는 그에 보답하기 위해 황금으로 ‘王老吉’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주전자를 선물했고, 이 때문에 왕라우지 냉차 가게의 명성은 광동과 인근에 더욱 퍼졌다고 한다.

왕택방은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슬하에 세 아들을 뒀다. 그들의 후손들 일부는 광주에 남았고, 일부는 미국과 홍콩에 이주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 함께 중국 내 점포 및 공장은 모두 국유기업으로 변했고 홍콩 및 미국의 상표는 조주(潮州) 출신 상인 陳鴻道(진홍도 천훙다오)에게 넘어가 대륙과 홍콩 사이에 상표권 분쟁이 일어난 적도 있다.

그럼에도 1992년 진홍도가 이끄는 鴻道集團(홍도집단)에서 정식으로 상품화에 박차를 가해 2007년 중국 상무부로부터 ‘중국 전통 브랜드(中華老字號)’의 타이틀을 받았다. 2013년의 판매액은 중국내 냉차 시장 규모인 400억 위안(약 7조 2000억원)의 반을 차지하여 코카콜라의 판매액을 눌렀다.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100년 이상의 전통 브랜드 제품들은 적지 않다. 왕라우지는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홍콩에서 흔히 보이는 李錦記(이금기 리캄키) 굴기름(蠔油)도 역시 미국 시장에서 판매 점유율이 1위이며, 일본에서는 전체 굴기름 시장의 2위를 차지했다.

굴 기름은 아주 우연히 만들어졌다. 원래는 굴을 요리하다가 태워버린 상태에서 비롯했다. 시커멓게 탄 굴에서 배어나는 기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던 굴 기름은 점차 동네에서 맛난 기름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888년 이 굴 기름이 상품화한다. 그 이후 128년째에 이른다.

이제는 중국인의 발길이 닿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유명 브랜드로 발전했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 동북아 어느 곳에서도 LEE KUM KEE(李錦記) 광고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인이 만드는 최고의 기름, 간장의 대명사다. 전 세계 중국인들의 필수품이 된 이 제품도 역시 광주출신(廣府商幫)상인이 만든 제품이다.

16세기 이래 서양에서 전쟁 중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병이 있다. 천연두, 페스트와 함께 늘 거론되는 티푸스(Typhus)다.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이한 티푸스 예방을 목적으로 크레오소트 진통성분을 함유한 크레오소트정을 병사들에게 지급한다.

그러나 이런 살균 작용은 전쟁터에서 발생하는 설사 이질 등을 멈추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따라 러일 전쟁 승리 후에 일본은 이 약을 설사와 이질 방지용으로 사용했다. “러시아를 정벌하는데 사용했다”는 의미에서 이 약에는 ‘정로환(征露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나중에는 정벌(征伐)의 ‘征(정)’을 바르다는 뜻의 ‘正(정)’으로 고쳤다.

일본에서 정로환을 개발하기 7년 전인 1896년 광동 불산(佛山)에서 사계절 감기 구토 소화 불량 발열두통에 특효가 있는 보제환(保濟丸)이 선을 보였다. 광동 신회현(新會縣) 출신인 李兆基(이조기)가 오래 동안 쌓은 약초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보제차(普濟茶)를 만들었고 이것이 두통 및 소화불량 해소에 효능이 있자 알약으로 만들어 보제환(保濟丸)으로 나온 것이다.

1950년대 30톤에 불과하던 생산량이 1983년 300톤으로 늘어날 정도로 일반 시민들에게 소화제와 두통치료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120년 브랜드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재 홍콩 및 일본 한국시장 및 미국 등 중국인이 있는 곳에서 이 보제환은 어디서나 판매 중이다.

왕라우지(王老吉)의 냉차나, 보제환(保濟丸)은 모를 수 있어도 1960~1980년대를 대만이나 홍콩, 동남아 일대를 여행해 본 한국인들은 다 알 수 있는 약품이 하나 있다. 바로 Tiger balm이라고 하는 만금유(萬金油)이다. ‘호랑이표 만금유’라고 해서 한자로는 虎標萬金油(후뱌오완진여우)라고 적는 제품이다.

이 약을 만든이는 후즈친(胡子欽)이다. 중국 복건(福建) 영정현(永定縣)에서 태어나 1861년 미얀마로 이주했다. 그는 더위를 물리치는 비방(秘方)이 있었던 듯하다. ‘옥수신산(玉樹神算)’이라는 도교의 상상세계 속 궁정으로부터 내려왔다는 처방이라는 얘기가 있다.

아무튼 그는 이 비방으로 약을 만들어 현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돈을 벌었다. 후에 그는 랑군에서 永安堂(영안당)이라는 약방을 열어 본격적으로 치료 활동에 나섰는데,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 인심을 얻었다 한다. 그런 그에게 胡文虎(호문호), 胡文豹(호문표)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 두 형제는 나중에 부친의 약방을 거쳐 나온 제품들을 싱가포르와 태국, 홍콩 등지로 판매했다. 특히 형인 호문호(胡文虎)의 노력으로 판매량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중에 브랜드에 형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호(虎)를 추가해 ‘호랑이표 만금유’라고 했다.

현대적인 용기에 담겨 대량으로 만들어진 계기도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형인 호문호(胡文虎)는 어느 날 랑군 길거리에서 길을 가다가 일본 사람들이 더위를 잊기 위해 일본산 인단(仁丹) 먹는 장면을 우연히 봤다. 그는 일본 제품인 인단의 포장을 보면서 ‘우리 만금유도 휴대가 편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런 곡절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 휴대가 간편한 형태의 만금유다.

중국 속담 하나 소개한다. “道德傳家,十代以上. 耕讀傳家次之,詩書傳家又次之. 富貴傳家,不過三代”라고 적는 내용이다. 옮기자면 “도덕을 물려주면 10대 이상 내리 후손들에게 전달이 되고, 밭일하며 공부하는 것을 물려주면 그 아래, 글이나 물려주면 또 그 아래다. 부귀를 물려주면 그러나 3대를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를 줄여 “富不過三代(부자는 삼대를 이어가지 못한다)”고 줄여서 쓴다. 광동 사람들이 해외에서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브랜드들은 일일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귀중함 그 자체다. 새로운 것을 향해 주저 없이 나서 열심히 앞날을 개척하는 이들이 광동인이다. 이들은 오늘도 부지런함, 그에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정신까지 보태면서 경쟁력을 왕성하게 키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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