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01.05 04:00

포레스트 리서치 "모든 기업은 '디지털 약탈자' 또는 '디지털 희생양' 중 하나 될 것"

LG유플러스 직원들이 2일 하현회 부회장의 신년사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LG유플러스)
LG유플러스 직원들이 2일 하현회 부회장의 신년사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LG유플러스)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미리 입이라도 맞춘 것일까. 올해 각 기업 총수들이 내놓은 신년사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단어가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이 그 주인공이다. 마치 DT를 빼놓으면 '신년사 트랜드'에 뒤처지는 '아재 기업'이 되는 모양새로도 보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2일 내놓은 신년사에서 "올해가 그룹 '디지털 혁신 원년'이라는 각오로 DT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룹 전반에 DT를 가속화해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DT 가속화를 신년사에 포함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신년사에서 "현재 그룹은 스마트조선소, 스마트팩토리 등 DT를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는 더욱 속도를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기술과 혁신'만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단순히 물리적 기술만이 아닌, 그룹의 모든 조직·제도·방식도 변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이루기 위해 전 사업영역에서 DT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디지털 혁신 의지를 반영해 LG유플러스는 기존 '오프라인 시무식'도 '온라인 시무식'으로 바꿨다. 

지난 2일, '스탠딩 토크' 형식으로 자유롭게 진행된 '2020년 GS 신년모임'에서 허태수 GS 회장도 DT를 언급했다. 이날 허 회장은 "IT와 데이터를 결합해 우리의 사업구조를 고도화시키는 DT에 힘써 달라"며 "중·장기적으로 GS가 보유한 '디지털 역량'을 접목하고, 신사업을 확장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인프라코어와 중공업 등이 추진해 온 DT 과제에서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앞서 두산은 지난 2017년부터 '최고디지털혁신(CDO)' 조직을 신설해 DT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CDO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두산의 각 사업영업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에는 IT 기업을 제외한 국내 기업 중 최초로 SAP가 선정하는 '피나클 어워드' 수상기업이 되는 성과도 거뒀다. 수상 부문은 '올해의 ISV(독립 소프트웨어 개발사) 파트너'다. 

스타벅스 앱을 활용해 '사이렌 오더'를 사용하는 모습. 사이렌 오더는 성공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로 평가받는다. (사진=전다윗 기자)
스타벅스 앱을 활용해 '사이렌 오더'를 사용하는 모습. 사이렌 오더는 성공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로 평가받는다. (사진=전다윗 기자)

◆왜 DT는 2020 신년사 '단골손님'이 됐나

컨설팅 업체 AT커니는 DT를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AI, IoT 등 디지털 신기술로 촉발되는 경영 환경상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현행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활동"이며 "아울러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한 신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DT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트 리서치는 "2020년까지 모든 기업은 '디지털 약탈자(Digital Predator)' 또는 '디지털 희생양(Digital Prey)' 중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디지털 기술은 전례 없이 빠르게 비즈니스 환경을 바꾸고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7곳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 IT 기반 플랫폼 기업이다. 불과 10년 전인 2009년, 시총 10대 기업 중 플랫폼 기업은 2곳뿐이었다.

성공적인 DT로 반등에 성공한 사례도 적잖다. 스타벅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8년 스타벅스는 창업 이래 첫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무분별한 매장 확대로 인한 경쟁력 감소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맞물린 결과다. '가성비'를 내세운 후발주자들의 도전도 매서웠다.

위기상황에서 스타벅스가 꺼내든 수는 DT였다. 모바일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주문, 결제, 리워드,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도입한 원격주문 시스템 '사이렌 오더'가 대표적이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평균 전체 주문 건 중 사이렌 오더 주문 비중이 13%를 차지하고 있다. 반등에 성공한 스타벅스는 적자를 탈출했으며, 2016년 1분기 기준 스타벅스 충전카드 적립금 총액은 12억 달러를 넘겼다.  

이지은 마이크로소프트코리아 부사장도 지난해 11월 '마이크로소프트 인비전 포럼'에서 반등의 이유로 DT를 손꼽았다. 1975년 창립한 MS는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 등으로 업계를 독주해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모바일 중심 산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애플 등 경쟁사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변화가 절실한 MS는 2014년 사티아 나델라 MS 클라우드&엔터프라이즈 수석 부사장을 CEO로 깜짝 발탁했다. 사티아 나델라는 조직 문화를 포함한 기업 전반에 걸친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MS는 2018년 말 시가총액 1위를 탈환했다. 2003년 이후 처음이다. 

국내 기업의 DT 추진도 활발하다. 오는 2025년 상용화가 목표인 두산인프라코어의 '컨셉트-엑스'도 좋은 예다. 컨셉트-엑스는 드론을 통한 3D 스캐닝으로 작업장 지형을 측량하고, 지형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업 계획을 수립하는 종합 관제 솔루션이다. 무인 장비 운용까지 도맡아 한다. 관제 시스템 '엑스 센터'를 중심으로 관련 정보도 모두 디지털화해 관리 가능하다. 컨셉트-엑스가 상용화되면 위험한 건설 작업은 장비에 맡기고, 사람은 분석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국내 기업들이 신년부터 'DT 가속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자생존·약육강식 구도로 접어든 4차산업혁명 시대, 살려면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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