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08.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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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이겼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격언이 있다. 성과에 취해 방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만한 끝에 큰일을 그르쳤던 사례는 따로 예를 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현 상황도 정부의 방심이 불러온 뼈아픈 결과다.

대한민국은 연일 들려오는 'K방역' 찬가에 도취됐고, 나날이 줄어드는 확진자 수에 해이해졌다. 그리고 그 해이함의 중심에 청와대와 정부, 집권여당이 있었다. 

지난달 31일 발표한 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뒤늦게 중단한 '8대 소비쿠폰'은 정부의 안이했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증거이다. 8대 소비쿠폰은 숙박, 관광, 공연, 영화, 전시, 체육, 외식, 농산물 등 8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소비를 촉진한다는 대의명분에 따라 마련됐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국민 모두 3일 연휴 중 집 밖으로 나가 먹고 마시고 숙박하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임시공휴일 지정의 이유로 내수 활성화를 꼽았다. 이 과정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한 '외출 유도'와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방역'은 결코 동행할 수 없다는 점은 소홀히 여겨졌다.

이같은 엇박자 행보에 방역당국은 애가 탔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달 22일 임시공휴일 지정에 우려를 표했다. 정 본부장은 "인파가 몰리는 휴가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질 수 있다"며 "집에서 보내는 휴식이 가장 좋다"고 당부했다. 이후에도 방역당국은 경고의 메시지를 지속해서 쏟아냈고, 연휴 전날인 14일에도 정 본부장은 "15~17일 연휴 동안 가급적 집에 머물러 달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는 코로나19를 어느 정도 잡았다고 오판, 내수 진작에 방점을 찍었다. 

결과는 처참한 오진으로 되돌아왔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간 발생한 확진자 수만 1500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범인과 화살받이 찾기에 급급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열린 광화문 집회에 참가한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을 직접 거론했다. 집회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공개적인 글이었다. '국가 방역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 '대단히 비상식적', '용서할 수 없는 행위' 등 이례적으로 비판 수위가 높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광화문 집회를 집단감염의 원흉으로 지적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화문에서 불법 폭력 시위가 벌어졌다. 방역수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집단 감염은 시작됐다"고 적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집회 참석 단체를 압수수색 해서라도 참석자 명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더 나아가 여당은 야당인 미래통합당에 해당 집회를 방조한 책임을 묻기도 했다.

물론 관련자와 관련 단체 등이 자가격리 등 방역지침을 어기거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이번 재확산의 원인을 단순히 광화문 집회로 특정할 수는 결코 없다. 

엄창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상적인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2주일이다. 학계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코로나19 잠복기는 평균 5.2일"이라며 "확진자가 8월 14일부터 증가했으니 이번 확산의 원인은 적어도 5일 이전인 8월 9일로부터 2주 전인 7월 31일 사이에 있어야 설명이 된다. 8월 14일부터 확진자가 늘어난 게 8월 15일 집회 때문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잠복기를 고려하면 최근 집단감염의 주범은 광화문 집회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이다. 엄 교수를 비롯한 의료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이미 2차 대유행에 들어간 듯 보이는 코로나19 상황은 엄중하다. 이렇게 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교정하는데 당·정·청은 집중해야 한다. 해이해진 마음도 다잡을 때가 됐다. 더 이상 책임 회피를 위한 희생양을 찾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할 궁리에 몰두하지 말고 정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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