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0.09.01 22:32

서울대 의대 교수들, 정부 방침에 격앙 '진료 중단' 움직임…"휴진 피해센터 운영, 환자 앞세워 의사 압박하겠다는 수법"

대학병원 현관에서 전공의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SBS 뉴스 캡처)
대학병원 현관에서 전공의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SBS 뉴스 캡처)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전공의와 전임의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과 ‘집단휴진 피해신고 지원센터 구축' 등 의사들을 향한 정부의 압박카드들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1일 오후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신경외과·흉부심장혈관외과·응급의학과학회 임원들은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정부에서 고발한 젊은 제자들의 구제방안과 향후 대응방향 모색을 위해 의협 제안으로 열린 간담회였다. 

하지만 회의는 열띤 토론에서 강경한 분위기로 이어졌고, 급기야 정부를 향한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회의에 참석한 학회 임원은 “전공의들이 고발을 당하면서 교수들도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필수의료 분야를 먼저 고발해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린 꼴이다", "고발 당하지 않은 전공의까지 그만두겠다고 할 정도다”라며 격앙된 현장 소식을 전했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학회 임원들은 젊은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하겠다는데 결론을 모았다”며 “6개 전문학회가 함께 대응하자는 성명서를 즉석에서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학회는 성명서에서 “정부가 고발한 10명의 의사는 모두 정부가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필수의료 의사”라고 전제하고 “이들이 강제 업무명령의 대상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사실관계 확인조차 없이 고발한 것은 이 나라의 필수의료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학회는 또 “하루하루 무거운 책임과 성실로 최선을 다하는 필수의료 인력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전공을 계속할 것인지”를 묻고 “다른 분야의 전공의조차 이런 충격적 광경에 참담함과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성명서는 시종일관 교수들의 격한 감정을 담았다.

학회는 “대한민국 의료를 지탱해 온 필수의료가 정부의 폭압에 무너지고 있다. 무분별한 고발조치는 한 순간이지만 그로 인한 악영향과 후유증은 계속될 것”이라며 “젊은 의사들에 대한 탄압과 의료계가 반대하는 4가지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편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제자들의 집단휴업과 이들에 대한 정부의 고발이 계속될 경우 업무 중단도 불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파문을 키우고 있다. 교수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공의 고발 등 행정조치가 지속될 경우’ 교수 10명 중 7명이 진료 중단, 사직 등 강경 집단행동을 펼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과 30일 서울대병원은 본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교수 5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전공의·전임의 형사고발에 이은 추가 행정조치에 대한 입장’에서 설문에 응답한 교수 294명(55.3%) 중 46.9%가 ‘학교에 겸직정지를 요청하겠다’고 응답했다. 겸직 정지란 교수직은 유지하지만 병원업무는 중단하겠다는 의미다.

또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교수도 25.2%나 됐다. 교수 10명 중 7명이 진료나 수술 같은 의료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반면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복귀를 권고한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10.5%)에 그쳤다.

교수들은 ‘의사 국가시험이 진행되면 위원으로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설문에서도 90.8%가 ‘거부한다’고 답했다. ‘예정대로 참여’는 7.5% 수준에 그쳤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교수들의 반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교수들의 강경 모드 전환은 전공의 고발과 정부가 추진하는 ‘집단휴진 피해 환자를 위한 의료법률 지원센터 구축’ 발표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서울대병원의 한 보직교수는 “휴진 피해센터 운영은 환자를 앞세워 의사들을 압박하겠다는 수법”이라며 “이 때문에 전체 교수들의 입장이 더 강경해졌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한 원로 교수는 “의사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의 초점은 밀실정책에 있다”며 “정부는 전문가를 배제한 정치적 결정에 의사들이 강경하게 반대해 왔던 선례를 참고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