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06.12 07:00

명암 교차하는 총수 사면…경제 전문가들 "삼성 역할 막중 '역할론' 기대"

재수감 207일 만에 가석방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nbsp;<br>
지난해 8월 가석방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현재 가석방 상태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복권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단체는 물론 정치계, 종교계 등에서도 사면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며, 이 부회장의 특사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부회장 사면론의 주된 근거는 '경제 활성화'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가석방됐지만, 아직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기적으로 재판에 참석해야 하며, 해외 출장 시 법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가석방 상태에선 등기이사에 등재될 수 없기에 공식적으로 삼성의 '얼굴' 역할을 하기도 힘들죠.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은 최근까지 대외적 경영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잠행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이 부회장의 족쇄를 풀어 경제 활성화 선봉에 세우자는 것이 사면 찬성파의 주장입니다. 전 정부들이 재벌 총수를 사면·복권할 때마다 항상 꼽았던 이유도 경제 활성화였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적잖습니다. 특정인만 받을 수 있는, 대다수 국민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특혜란 지적은 항상 따라옵니다. 사면 사유에 대한 의문도 존재합니다. 대기업 총수 사면과 경제 활성화 사이의 연결고리가 부실하다는 주장입니다. 가령 이 부회장이 사면될 경우, 삼성이 상당히 긍정적 효과를 얻을 것이란 데에 반론을 제시하기 어렵죠. 하지만 이 효과가 국익으로 이어지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겁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정말 이재용 부회장이 사면되면 경제가 살아날까요?

평창올림픽 유치 발표 순간 (사진제공=삼성전자)
평창올림픽 유치 발표 순간. (사진제공=삼성전자)

◆과거 재벌 총수 사면 사례는?…긍정·부정 효과 '명암 교차'

재벌 총수 사면은 수차례 반복됐지만 이에 따른 효과를 분석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딱 부러진 수치로 비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요. 그래서 과거 사례들을 짚어봤습니다. 과거 사면된 총수들이 긍정적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면, 이 부회장 사면 또한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겠죠.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그룹 회장 시절인 지난 2008년 사면됐습니다. 이명박 정부 임기 첫해 이뤄진 광복절 특사였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던 시기입니다. 사면된 정 명예회장은 그해에만 11조원을 투자하고 4500명을 채용했습니다. 2400곳이 넘는 국내 협력 업체와 역대 최대 규모의 공정거래협약도 체결했습니다. 

이듬해인 2009년엔 파격적인 원포인트 사면도 있었습니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주인공입니다. 2010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앞두고 있던 시점입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번번이 실패하며 '이건희 역할론'이 커졌죠. 기업인 한 명을 위한 사면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고, 당시 이 전 대통령도 꽤나 고심했다고 합니다. 이 전 회장은 IOC 위원으로 복귀해 1년 6개월간 10여차례 해외 출장을 나가 110명의 IOC 위원과 만나는 강행군에 돌입했죠. 결국 평창올림픽 유치에 혁혁한 공을 올렸단 평가를 받습니다. 

지난 2015년 사면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24년까지 국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4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경기 이천에 설립한 최첨단 반도체 공장 M14를 포함한 생산시설 3곳을 국내에 구축했습니다. 2016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경영에 복귀한 뒤 'K-콘텐츠'로 각광받는 문화산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습니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휩쓴 영화 '기생충'도 CJ가 투자했죠. 

다만 마냥 긍정적 효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난 2007년 사면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사면 취지는 이건희 전 회장과 똑같이 올림픽 유치였습니다. 박 전 회장은 나름대로 올림픽 유치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과는 실패였죠. 

앞서 긍정적 효과 창출의 예로 들었던 최태원 회장 역시 어두운 부분이 있습니다. 최 회장은 2008년 이미 한 차례 사면된 바 있는데요. 사면 79일 뒤 회삿돈으로 선물투자를 해 2014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015년에 다시 사면을 받는 곡절을 겪었습니다.

삼성전자 본사에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nbsp; 삼성이 위험하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사진제공=삼성전자)

◆"산업 생태계 이끌며 '낙수 효과' 기대"…이재용과 삼성의 '역할론'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요. 대체로 이재용 부회장 사면이 몰고 올 긍정적 효과를 언급했습니다. 반대 의견에도 일견 공감하지만, 그래도 플러스 효과가 더 크다고 본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을 필두로 한 삼성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80%로 세계 2위다. 수출과 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라며 "삼성은 매출액의 80%가 해외에서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 무역의 큰 축이다. 이 부회장이 사면된 후 삼성이 적극적 대외 수출에 나선다면, 그 효과가 국내 전체로 퍼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사우디나 유럽의 경우 전문경영인을 만나주지 않는다. 그들은 오너만 만난다"며 "이런 곳에서 글로벌 경영을 하려면 이 부회장이 필요하다. 최고경영자(CEO)가 형사 처벌을 받고 있으면 일부 국가에서는 거래 자체를 못 하는 문제가 생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낙수 효과'를 언급했습니다. 재계 1위 삼성이 반도체는 물론 바이오, AI, 로봇 등 신사업 분야에서 생태계 전체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장기적 관점에서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오너의 역할이 필수적이란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김 교수는 "반도체 패권 경쟁은 어느새 국가 대항전으로 번졌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현재 삼성은 파운드리 부문에서 대만 TSMC를 추격해야 하는 입장이다. 반도체 설계 분야인 팹리스는 아예 시장 자체를 만들어가야 할 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오너가 자유롭지 못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반도체 패권을 위한 삼성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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