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11.06 08:00

내년 11월 비밀투표로 결정…4대 그룹 총수, 민간 외교 역량 '발휘'

체코 프라하 총리실에서 정의선(왼쪽에서 두 번째) 현대차그룹 회장이 페트르 피알라&nbsp;체코 총리와 토마쉬 포야르 총리 외교·안보 자문역, 백철승 현대차 체코공장 법인장 등과 함께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지 요청과 현대차 체코공장의 전동화 체제 전환 등 상호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br>
지난달 체코 프라하 총리실에서 정의선(왼쪽에서 두 번째) 현대차그룹 회장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 토마쉬 포야르 총리 외교·안보 자문역, 백철승 현대차 체코공장 법인장 등과 함께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2030 세계박람회(월드 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위한 최종 투표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상황은 녹록지 않다. 차이를 좁혔다고는 하나, 부산은 여전히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뒤진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와 함께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 나선 기업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구축해 둔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실무자들은 물론 총수까지 활발히 해외 출장에 나서고 있다. 1년 안에 격차를 좁히려면 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의 역량까지 결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 엑스포는 '등록 엑스포'와 '인정 엑스포'로 구분된다. 제한된 주제로 한정된 면적에서 열리는 인정 엑스포와 달리, 등록 엑스포는 광범위한 주제로 5년에 한 번 6개월 동안 전시 면적 제한 없이 열린다. 등록 엑스포는 통상 월드 엑스포라 칭하며, 월드컵·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국제 행사로 불린다. 앞서 우리나라는 대전과 여수에서 인정 엑스포를 개최한 바 있으나, 등록 엑스포는 한 번도 유치하지 못했다. 

정부는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월드컵과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우리나라가 이번 부산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다면, 적지 않은 국가적 위상 제고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3대 국제 행사를 모두 개최한 국가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독일, 이탈리아뿐이다.

실리도 크다. 유치 시 4500만명의 예상 관람객, 61조원의 경제 효과, 약 50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예상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2030 박람회 유치 도시는 내년 11월 BIE 170개 회원국의 비밀투표로 결정된다. 1년 앞으로 바짝 다가왔지만, 엑스포 유치전은 여전히 리야드가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슬람권의 전폭적 지지와 오일머니를 앞세워 70개국 이상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객관적 조건에서도 부산이 밀린다. 리야드 인구는 약 770만명으로 부산·울산·경남 인구와 엇비슷하고, 전시 면적도 넓다. 반면 부산은 가석도 신공항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25일(현지시간) 송호성(왼쪽 두 번째) 기아 사장이 벨린다 발루쿠 부총리 등 알바이나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을 부탁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송호성(왼쪽에서 두 번째) 기아 사장이 벨린다 발루쿠 부총리 등 알바이나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을 부탁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녹록지 않은 경쟁 상황에서 대역전극을 쓰기 위한 '히든카드'로 민간 외교 역량이 꼽힌다.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우리 기업들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2025년 월드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 일본의 경우, 민간 경제계가 주도하는 유치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민간 부문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낸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엑스포 유치 특명을 받은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전담팀을 만들고, 총수까지 직접 뛰는 등 총력전에 나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유럽 3개국에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유럽은 국제박람회기구(BIE) 내 가장 많은 48개 회원국을 보유한 지역이다.

현대차그룹 '부산엑스포유치지원TFT'를 이끄는 송호성 기아 사장은 세르비아, 알바니아, 그리스 등 유럽 3개국을 방문해 2030 부산세계박람회 개최에 대한 지지와 협조를 요청했다. 송 사장은 지난 9월엔 외교부 장관의 첫 번째 기업인 특사 자격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3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직접 뛰었다. 정 회장은 지난달 27~28일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연이어 방문,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 에두아르드 헤게르 슬로바키아 총리를 예방해 부산 엑스포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부탁했다. 

최태원(사진 왼쪽) SK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미국 뉴욕에서 하카인데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과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제공=SK)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하카인데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과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SK그룹)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회 공동위원장 겸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을 오가며 숨가쁜 유치 활동에 한창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BIE 총회 3차 경쟁 프레젠테이션도 총괄하고 있다. 최 회장 외에도 SK그룹 경영진들 역시 유럽, 중앙아시아 등을 넘나들며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했다. 

그룹 차원의 유치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부산 엑스포 유치 지원 민간위원장을 맡은 지난 6월부터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최고 경영진들이 전면에 포진된 'WE(World Expo) TF'를 발족했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현지 시각) 파나마시티에 위치한 파나마 대통령궁에서 라우렌티노 코르티소(가운데) 파나마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9월 파나마시티에 위치한 파나마 대통령궁에서 라우렌티노 코르티소(가운데) 파나마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도 총수 이재용 회장을 필두로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9월 부산 엑스포 유치 대통령 특사 자격을 부여받은 이 회장은 멕시코와 파나마, 영국 등을 돌며 엑스포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등판했다. 이 회장은 국내 재계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그간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민간 외교의 구심적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구광모(왼쪽) LG 대표가 지난 3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총리실에서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를 예방했다. (사진제공=LG)
구광모(왼쪽) LG그룹 회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총리실에서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를 예방하고 부산 지지를 요청했다. (사진제공=LG)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지난달 폴란드로 날아가 유치 활동을 펼쳤다.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를 예방하고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지지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구 대표는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LG에게는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의미가 큰 곳이다. 수많은 한국 기업이 이곳에서 태동하고 도약해 오늘날 한국 산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다"며 "세계박람회가 추구하는 '새로운 희망과 미래'에 대한 소통의 장이 부산에서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한국의 모든 국민이 세계박람회 유치에 어느 나라보다 열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에는 LG전자 초청으로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수단, 케냐, 르완다, 앙골라 등 아프리카 6개국 주한 대사 및 외교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유치 활동을 벌였다.

윤상직 부산 국제박람회 유치위원회 사무총장은 "다른 경쟁국과 달리 글로벌 기업 등 많은 우수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1970년 오사카 엑스포를 개최했던 일본은 민관의 체계적 역할 분담을 통해 2025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다"며 "일본의 사례처럼 정부‧지자체·민간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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