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백진호 기자
  • 입력 2023.03.09 12:19
펨토초 레이저를 조사하여 형성된 흑린 나노 리본. (사진제공=울산과학기술원)
펨토초 레이저를 조사하여 형성된 흑린 나노 리본. (사진제공=울산과학기술원)

[뉴스웍스=백진호 기자] 권오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화학과 교수팀이 펨토초(10~15초) 레이저를 통해 반도체 소재인 흑린에 ㎚ 수준의 정확도로 미세패턴을 형성하고, 여러 형태의 나노 구조체를 만들어내는 차세대 광시야 포토리소그래피를 개발했다 .

9일 UNIST에 따르면 연구팀은 전 과정을 투과 전자현미경을 통해 실·시공간에서 직접 관측해 나노 패턴이 형성되는 물리학적 이유, 그 근간이 되는 빛과 물질 간의 상화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도 함께 제시했다.

최근 여러 반도체 기업이 초미세 회로 패턴 공정을 위한 극자외선 노광 장비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짧은 파장의 빛을 이용해 반도체 기판에 더 미세한 회로와 패턴을 그릴 수 있고, 소자의 면적을 줄여 고성능·저전력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자외선 노광 장비의 높은 희소성 때문에 차세대 포토리소그래피 기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UNIST 연구진은 1000조분의 1인 펨토초 레이저로 1㎚ 수준의 미세패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단일한 형태가 아닌 여러 형태의 구조체를 탄생시켰다. 결과적으로 펨토초 레이저를 활용한 차세대 광시야 포토리소그래피를 창조했다.

연구팀은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515㎚ 파장의 빛을 흑린 시료에 순간적으로 조사해 빛 파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너비와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간격을 지닌 나노 리본 배열을 만들어냈다. 이는 극자외선 노광 장비로 표현할 수 있는 패턴의 최소 선폭에 달하는 해상도다. 흑린 시료의 결정 구조에 구애받지 않고 쬐어주는 빛의 편광에 따라 리본이 형성하는 방향을 바꾸거나 큐브, 링처럼 여러 형태의 나노 구조체를 제작할 수 있다. 이는 특정한 결정 방향을 지닌 나노 구조체만을 만들 수 있는 합성 방법들과 다르다.

현재 소자 미세 공정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전자빔 리소그래피는 높은 해상도와 정밀처리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공정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전자빔을 기판에 스캔하는 과정에서 해상도와 정보처리량이 반비례한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연구팀의 광시야 포토리소그래피 기법은 사전 공정 과정이 필요 없고, 해상도의 1000배에 달하는 영역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연구팀은 빛을 통해 흑린에 미세 나노 패턴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로 빛의 변조 불안정에 의한 '솔리톤' 형성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빛이 흑린과 같은 비선형 매질에서 교란 운동을 겪으면, 에너지 손실 없이 파형과 속도를 유지하는 특이 파동을 형성할 수 있는데 이것이 솔리톤이다. 흑린이 조사된 레이저 빛과 상호작용을 통해 솔리톤을 생성했고, 부분적으로 에너지가 높아진 파동의 마루를 따라 인 원자가 방출되며 패턴이 생성된 것이다.

제1 저자인 김예진 박사는 "나노 구조를 제작하기 위해 기존 리소그래피 기술은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져 왔고, 화학 합성법들은 바텀업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며 "본 연구는 빛을 이용하는 동시에 흑린의 특이 물성을 유도해 나노 패턴을 만들어내 톱다운과 바텀업 양방향으로 접근해 나노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권오훈 화학과 교수는 "투과 전자현미경을 통해 광시야 포토리소그래피를 구현하고 패턴을 형성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며 2차원 반도체 소재에 높은 해상도로 정확한 패턴을 동시 구현한 것은 처음이다"며 "빛-물질 간의 비선형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광학 현상을 토대로 차세대 반도체 소자 제작 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나노 화학 및 나노 소재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나노 레터스'에 3월 6일(현지 시각) 자로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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