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06.24 14:00
바람에 날리는 유럽연합기. (사진=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 담당 집행위원 공식 트위터 캡처)
바람에 날리는 유럽연합기. (사진=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 담당 집행위원 공식 트위터 캡처)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유럽연합(EU) 의회가 지난 14일 본회의에서 '배터리법'을 승인했다. 배터리법은 EU 시장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전기차 등 배터리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친환경성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다. EU집행위원회가 지난 2020년 12월 초안을 발의한 지 2년 반 만에 승인됐고, EU이사회를 남겨두고 있다. 

이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스마트폰을 공급하는 전자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려는 길 같아"…K배터리 '차분히 대응'

EU 배터리법은 시행 8년 뒤부터 배터리 원료 재활용 의무가 부과되는 게 핵심이다. 코발트는 16%, 납은 85%, 리튬과 니켈은 6% 재활용해야 한다. 시행 13년 후에는 재활용 원료 비율이 ▲코발트 26% ▲납 85% ▲리튬 12% ▲니켈 15% 등으로 조정된다. 이사회 승인만 거치면 법률이 시행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는 2031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 폐배터리 재활용 확대를 위해 폐배터리 내 리튬의 50%, 코발트·구리·니켈은 각각 90%를 2027년까지 의무적으로 수거해야 한다. 2031년에는 리튬 80%, 코발트·구리·납·니켈은 95%로 확대된다.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EU 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번 법안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7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공장을 가동했고, 올해 생산라인 규모를 기존보다 두 배 증설할 계획이다. 포드와는 오는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튀르키예에 배터리 셀 합작공장을 짓는다. 삼성SDI와 SK온도 각각 2017년과 2020년부터 헝가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배터리법이 통과돼도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재활용과 폐배터리 활용의 중요성이 강조된 만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이미 대응 사업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기업들이 요청한 점도 배터리법 조항에 포함됐다. 정부와 배터리 기업들이 지속 대응한 결과, 폐배터리에 한정되던 재생 원료 출처를 배터리 제조 폐기물까지 확대했으며,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해 향후 사용 의무 비율을 하향 조정할 수 있는 조항도 확정됐다. 

이에 기업들은 주요 조항의 본격 시행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관련 법 하위법령 제정 등에 차분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용자가 갤럭시 S22 울트라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사용자가 갤럭시 S22 울트라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탈부착 배터리 압박…'일체형' 삼성전자 타격 예상

하지만 전자 업계는 상황이 다르다. '휴대용 기기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소비자가 쉽게 제거하고 교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배터리법 11조 때문이다. 

배터리법에서 요구하는 스마트폰 배터리는 '탈착식'이다. 하지만 최근 휴대전화는 일체형 배터리가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애플은 2007년부터, 삼성전자는 2015년 갤럭시 S6시리즈부터 일체형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일체형 배터리는 제품을 더 얇고 확장성 있게 디자인할 수 있고, 방수 방진 기능이 유리하다. 하지만 EU의회 측은 "배터리 일체형 스마트폰은 고장나면 전체 디바이스를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환경 오염이 막심하다. 탈착형 배터리는 교체도 쉽고 폐기물도 적다"라는 입장이다.

EU의 탈착 배터리 제도 시행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는 상당한 혼란이 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EU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EU 공급을 위해 생산라인 전체를 변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탈착형 배터리 설계 기반 공급모델 위주로 설계를 바꾸고 생산도 이분화해야 한다. 이는 제조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도 유발한다. 이에 삼성전자는 산업부에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입장 전달과 함께 적극 지원을 요청했지만, 대처방안은 한 번의 회의에 그쳤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EU의 배터리법이 국내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앞으로 제정될 하위법령에 대해서 국내 기업들과 긴밀한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는 "국내에서는 사용 후 배터리 관리 규정, 탄소 배출량 평가 기법 등 관련 제도들을 마련하고 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 등 관련 기술 개발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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