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3.07.20 16:50

학교 앞 추모 행렬 이어져…'금쪽이' 우선에 교사 보호는 뒷전
동료 교사 "진상 규명 촉구, 지속적 관심 필요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소재 서울서이초등학교 정문에 전날부터 추모객들이 남긴 꽃다발과 추모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소재 서울서이초등학교 정문에 전날부터 추모객들이 남긴 꽃다발과 추모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은 하얀색 꽃밭이 됐다. 

전날 해당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2년 차 교사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소식에 19일 이른 오전부터 오후까지 동료 교사 등 수백여 명의 추모객들이 찾아와 고개를 숙였고, 전국 각지 교사들이 보내온 화환을 옮기는 트럭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추모를 위해 방문한 이들은 준비해 온 국화꽃을 헌화하며 눈물을 훔쳤고, 안타까운 마음을 빼곡히 적은 포스트잇이 떨어지지 않게 꾹꾹 눌러 붙이기도 했다.

이미 정문 앞에는 꽃다발과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전날 밤부터 하나씩 자리하던 포스트잇은 어느새 정문 기둥을 가득 메웠다. 포스트잇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선배 교사들이 잘못했어요"라며 미안함과 애도를 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다른 포스트잇에는 "선배님의 소중한 생명이 헛되지 않도록 저희가 힘을 합쳐 학교를 바꿔 교육을 밝히겠습니다", "선생님의 억울함, 고통을 밝혀주세요"라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내용도 있었다.

학교 정문에 동료 교사 등 추모객들이 써 내려간 추모 메시지가 가득 붙어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학교 정문에 동료 교사 등 추모객들이 써 내려간 추모 메시지가 가득 붙어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학교 정문에서 만난 한 교사는 '교사로서 첫발도 채 떼지 못한 그이를 추모하며'라는 제목의 긴 글을 교문에 붙였다. 그는 "오랜 시간 꿈꿨을 직장, 교직. 학창 시절, 대학 시절, 그리고 임용을 위해 참 열심히도 달려왔을 걸 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발 디딘 지 채 5년을 넘기지 못한 채 떠나게 된 그이. 그이의 일이 그저 없었던 일처럼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며 애도를 표했다.

학교 주변 담장은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환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한쪽 벽에만 줄지어 있던 화환은 오후가 되자 양쪽으로 길게 늘어섰다.

한 화환에는 '작년 담임 선생님이라 행복했어요. 1학년 8반 학생 일동'이라는 문구가 적힌 리본이 덩그러니 매어져 있었다.

보내는 사람은 대부분 '동료 교사 일동', '선배 교사 일동' 등으로 표기돼 있었다. '대구 교사 일동', '서울시 교육청 일동', '학부모 일동'으로 적힌 화환도 눈에 띄었다.

추모객들이 헌화한 국화꽃. '선생님 이제 편안하세 쉬세요!'라고 서툰 글씨로 적은 포스트잇이 눈에 띈다. (사진=정민서 기자)
추모객들이 헌화한 국화꽃. '선생님 이제 편안하세 쉬세요!'라고 서툰 글씨로 적은 포스트잇이 눈에 띈다. (사진=정민서 기자)

해당 사건은 고인이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며 학부모 민원에 괴로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추모를 위해 이곳을 찾은 교사들은 '금쪽이' 우선에 정작 교사의 보호는 뒷전이 됐다고 토로했다. 교사 A씨는 "학생들 사이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경찰에 신고해도 다시 학교 측으로 돌아온다"며 "우리나라는 담임이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학교폭력 문제는 해당 학생의 담임이 모두 떠안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교사인 B씨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관리에 대해 "교사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따로 관리가 필요하다"며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초등교사 커뮤니티만 봐도 매일 글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교사가 내몰리고 있는 상황 속 누구라도 저 선생님처럼 될 수 있다"며 "(단발적인) 기사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서이초등학교 앞에서 교사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서울서이초등학교 앞에서 교사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해당 사건이 하룻밤 새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교사노조, 전교조 등은 교육 당국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고인은) 1학년 담임 및 학폭 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학교폭력 사건이 사망의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SNS상에서 유포되고 있다"며 "교육 당국과 경찰 당국에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수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이날 긴급성명을 통해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구성원들을 떠나보내고 있다"며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 당국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안전하게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일 오후 3시 교사들이 추모 문화제를 위해 서울서이초등학교 앞에서  모이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20일 오후 3시 교사들이 추모 문화제를 위해 서울서이초등학교 앞에서 모이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한편, 학교 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고인의 담임 학년은 본인의 희망대로 배정된 것"이며 "고인의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로, 이 또한 본인이 희망한 업무"라며 의혹을 일체 부인했다. 담임 교체 의혹에 대해서는 "올해 3월 1일 이후 고인의 담당 학급의 담임 교체 사실이 없다"며 "해당 학급에서는 올해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고 이와 관련해 해당 교사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일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학교 정문 앞에서는 전국 초등학교 교사들이 모여 국화꽃과 촛불을 들고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SNS를 통해 모임 장소, 시간, 복장 등을 공유했다. 이들은 모두 검은 마스크와 검은 복장을 한 채 고인을 애도하며 슬픔을 나눴다. 추모 문화제는 오후 7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오후 5시 서울서이초등학교에는 수백여 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임시 분향소 마련을 위해 경찰이 정문을 통제하자, 추모객과 경찰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사진=정민서 기자)
오후 5시 서울서이초등학교에는 수백여 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임시 분향소 마련을 위해 경찰이 정문을 통제하자, 추모객과 경찰 사이 잠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사진=정민서 기자)

오후 5시경 학교 측은 추모객들이 크게 늘어나자, 정문 안쪽 녹색 펜스 앞에 임시 추모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임시 분향소가 설치될 때까지 경찰이 정문 앞을 통제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추모객과 경찰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자신을 교사라고 밝힌 한 추모객은 “사건 발생이 화요일이었는데 여태 분향소 준비도 안 한 게 이해되지 않는다. 과연 학교 측이 애도하는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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