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7.31 16:06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우유 제품 구입에 고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우유 제품 구입에 고심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유업계가 가격 인상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원유가격 인상으로 제품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부의 강력한 물가안정 기조로 인해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업체들은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인상안을 최소화하거나, 가격을 올리지 않는 현상 유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유업체마다 가격 인상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앞서 낙농진흥회는 지난 27일 용도별 원유기본가격 조정 협상소위원회 제11차 회의를 통해 용도별 원유 기본가격을 리터(ℓ)당 88원 인상했다. 또한 치즈, 연유, 분유 등 가공유제품에 사용하는 원유 기본가격도 리터당 87원 인상했다. 이로 인해 용도별 원유 기본가격은 1084원, 가공유제품 원유 기본가격은 887원으로 결정됐다.

◆매일유업, 깎고 올리고 '눈칫밥 먹기'

낙농진흥회는 “음용유용 가격은 협상 범위가 ℓ당 69~104원인 상황에서 생산비 상승 및 흰 우유 소비감소 등 낙농가와 유업계의 어려움을 반영했다”며 “가공유용 가격은 협상 범위가 ℓ당 87∼130원이지만, 수입산 유제품과의 가격경쟁을 위해 협상 최저 수준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가격 인상은 정부의 물가부담 완화 정책을 고려해 기존의 8월 1일에서 2개월 연기한 10월 1일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원유가격 인상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흰우유 900㎖ 1개는 3000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원유가격이 ℓ당 49원 오르자 유업체들은 흰우유 가격을 10% 가까이 올렸다. 현재 시중 유통채널에서 흰우유 가격은 2800~2900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유업계는 원유가격 인상이 결정되자 ‘눈치보기’에 돌입했다. 그동안 선두업체인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제품가격 인상에 나서면 매일유업과 남양유업, 빙그레 등이 뒤를 잇는 관행이었지만, 올해는 정부 압박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제품가격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이러한 분위기를 간파하며 선제적으로 제품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최근 매일유업은 컵커피 15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5.1% 인하했다. 매일유업은 국제 원두 가격의 안정화를 이유로 컵커피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수익성 훼손이 덜한 제품을 선발대로 내세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실제 매일유업은 컵커피 가격 인하 전인 지난달에 19종의 치즈 제품 출고가격을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18%까지 인상했다. 수입산 원료형 치즈 가격이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매일유업의 ‘바리스타룰스’ 컵커피는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1위 제품이기에 가격 인하의 상징성이 크다”며 “바리스타룰스는 최근 몇 년 사이 가격을 이어 온 터라, 가격을 소폭 내려도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컵커피 가격은 인하하고 수입 치즈 제품은 가격을 올리는 탄력적 조정이 정부당국에 가격 인상을 주도한다는 인상을 어느 정도 완화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사진제공=빙그레)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사진제공=빙그레)

◆빙그레, 이미 올릴 만큼 올렸다…영업익 '폭증'

일찌감치 주력 품목의 가격을 올린 업체들은 현상 유지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금 당장 가격을 올렸다간 세찬 ‘소나기’를 맞을 수 있어 한 박자 쉬어가겠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주력 제품인 ‘바나나맛 우유’ 가격을 두 자릿수 인상한 빙그레가 대표적이다. 빙그레는 지난해 11월 바나나맛 우유 가격을 1500원에서 1700원으로 13.3% 올린 바 있다. 바나나맛 우유 외에도 ‘요플레 오리지널’은 16% 올렸고,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적은 ‘굿모닝우유(900㎖)’는 8% 인상에 그쳤다.

여기에 지난 3월에는 ‘벨치즈’ 일부 제품은 가격을 최고 20% 올렸다. 지난해 9월 15% 가격 인상에 이어 6개월 만에 30% 수직상승한 것이다. 빙과류는 1년 전보다 무려 50% 인상해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을 주도했다.

빙그레는 잇따른 가격 인상에 힘입어 수익성 개선이 뚜렷해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50.2% 증가한 394억원을, 올해 1분기는 12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3.8% 급증했다. 사업부문별로 올해 1분기 우유 및 유음료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0.8% 증가한 1457억원, 아이스크림 및 기타 부문은 47.9% 증가한 1477억원을 기록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지금은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며 올해 가격 인상을 쉬어갈 가능성을 암시했다.

반면, 지난해 868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남양유업은 이러한 분위기가 달갑지 않다. 남양유업은 2019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영업적자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자금난 경색을 풀고자 유상증자까지 단행한 바 있다. 실적 부진의 골이 깊어져 가격 인상이 간절하지만, 경쟁업체들마다 가격 인상을 미루게 되면 ‘나홀로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유업계의 가격 인상을 막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 주목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가 유업체들에게 가격을 내리라고 강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상을 하더라도 적정 수준의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해 유업체들을 상대로 가격 결정권을 훼손한다는 인식을 불식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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