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3.09.17 14:00

SK지오센트릭, 1.8조 투입…세계 첫 폐플라스틱 재활용 복합단지 내달 착공

13일 울산 남구 SK지오센트릭 울산ARC 부지에서 SK지오센트릭 김기현PM이 열분해·후처리 기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땅에 묻고 태우던 과자 봉지, 페트병에 붙어 있는 비닐, 포장지 등의 쓰레기들이 열분해유라는 에너지 자원으로 재탄생합니다."

지난 13일 기자가 찾은 울산ARC 구축 현장에서 만난 김기현 SK지오센트릭 PM은 한 손에는 열분해 원료 중 하나인 비닐봉지 조각들을, 다른 한 손에는 열분해·후처리 공정을 마친 열분해유를 들고 이같이 말했다. 

SK지오센트릭은 다음 달 울산 남구 SK이노베이션 정유화학 복합단지 울산콤플렉스(CLX) 내 21만5000㎡ 부지에 세계 첫 폐플라스틱 재활용 복합단지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를 착공한다. 현재 부지 정지 공사(본격적인 건설에 앞서 터를 다지는 작업)를 진행 중이다. 이날 역시 수십여 대의 덤프 차량이 쉴 새 없이 정지 작업을 위한 흙을 나르고 있었다.

축구장 22개 넓이와 맞먹는 면적에 세워지는 울산ARC에는 총 1조8000억원이 투입된다. 본격 가동되면 매년 폐플라스틱 32만톤이 재활용된다. 500㎖ 생수병(약 15g)으로 환산하면 213억개에 달하는 규모다. 활용 방법이 없어 매립하거나 소각하던 쓰레기가 '미래 에너지 자원'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SK지오센트릭이 울산ARC에서 선보이는 플라스틱 재활용 방법은 '화학적 재활용'이다.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인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을 한 곳에서 구현하는 복합 재활용단지는 울산ARC가 세계 최초다.

여러 공사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울산ARC 공장 부지정지작업을 위한 흙을 나르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여러 공사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울산ARC 공장 부지정지작업을 위한 흙을 나르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기술 한계 뛰어넘은 '화학적 재활용' 도입…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

화학적 재활용은 급증하는 국내 쓰레기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다. SK지오센트릭이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는 이유다. 오는 2026년부터 수도권매립지의 폐기물 매립이 금지되고, 2030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생활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된다. 앞으로 모든 생활폐기물은 재활용되거나 반드시 소각 처리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한 재활용 기술의 일종인 화학적 재활용은 물리적 재활용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로 주목받는다. 물리적 재활용은 투명 페트(PET)병 등 제한된 쓰레기만 잘게 쪼개는 방법으로만 재활용이 가능해 반복적인 재활용이 어렵다. 하지만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의 오염도, 성상, 색상과 상관없이 폐플라스틱 대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다. 플라스틱을 세척하고 같은 색상끼리 모아야 했던 물리적 재활용의 단점을 극복하고,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고부가 기술이다. 반복적인 재활용에도 플라스틱의 물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장점 때문에, 물리적 재활용의 단점을 보완하는 한 차원 높은 재활용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기구들도 화학적 재활용을 주목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바젤협약은 '폐플라스틱 기술지침서'를 채택하고 화학적 재활용에 대한 가이드를 마련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장에서는 울산ARC의 하루 플라스틱 처리량과 처리량 대비 재생되는 플라스틱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 PM은 "하루에 (공장 가동률 기준) 열분해 공정은 200톤, 페트 공정은 270톤, PP공정은 200톤 정도"라며 "재생량의 경우 열분해유는 공정 수율의 67%, 페트는 연간 투입량 9만8000톤 중 7만톤, PP는 연간 투입량 7만6000톤 중 6만톤이 생산될 것"이라고 답했다.

열분해유의 원료가 되는 비닐봉지 등의 쓰레기와 열분해유 샘플, 각종 제품 패키징 등이 놓여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열분해유의 원료가 되는 비닐봉지 등의 쓰레기와 열분해유 샘플, 각종 제품 패키징 등이 놓여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후처리 기술 자체 개발 중…"쓰레기가 화학제품으로 바뀌는 연금술"

SK지오센트릭은 특히 열분해유 활용 확대를 위한 차별적인 기술(후처리)을 독자 개발 중이다. 열분해유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닐, 라면봉지 등을 녹인 기름이지만, 지금까지는 여러 부산물이 들어있어 품질이 다소 낮은 경유나 보일러 연료로만 활용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황화합물, 탄소 등의 부산물을 빼 순도를 높이는 후처리를 거쳐야만 석유화학공정에 원유 대신 투입할 수 있다.

회사 측은 이를 위해 열분해유 후처리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대전 유성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 실증설비를 갖췄다. 선행연구를 거친 실증설비는 추후 울산ARC 열분해 공장과 함께 지어진다.

울산ARC에서는 이 열분해 후처리유 중 일부를 울산CLX 나프타분해설비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 설비는 원유에서 추출한 납사를 투입해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설비다. 원유에서 추출한 납사를 대신해 쓰레기가 화학제품 원료로 쓰이는 '순환경제'가 완성되는 것으로, 일상에서 버린 쓰레기가 화학제품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열분해유는 버려지던 쓰레기의 자원화는 물론, 탄소 감축 기여도 가능하다.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열분해·후처리 과정의 탄소감축량 측정방법론을 개발해 환경부 인증을 받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 1톤을 열분해유로 재활용할 경우 소각할 때보다 탄소 배출량을 최대 2.7톤가량 줄일 수 있다.

열분해유 5종 샘플. 왼쪽부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후처리 열분해유, 등유(KERO)/경유 원료유(LGO), AR이다. (사진=정민서 기자)
열분해유 5종 샘플. 왼쪽부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후처리 열분해유, 등유(KERO)/경유 원료유(LGO), AR이다. (사진=정민서 기자)

열분해유를 추출하기 위해 높은 압력 공정을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는 없냐는 질문에 김 PM은 "당연히 공정 과정에서 탄소 배출은 일어난다"면서도 "하지만, 원래 완전 소각 처리하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만큼, 탄소 절감 효과가 크다"라고 답했다.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열분해 방식의 재활용은 플라스틱 소각 대비 최대 61.5%의 탄소 절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열분해유가 순환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서는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해 만든 열분해유를 석유 정제공정에 원료로 투입할 수 없다. 석유 대체연료 분류에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열분해유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지난 2021년 SK지오센트릭의 열분해유 투입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승인하는 등 규제 정비에 나서고 있다.

국회도 규제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현재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상임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석유에서 유래한 것을 재활용'했다면 석유 이외의 원료로 인정하고, 석유정제업자가 이 원료를 투입해 제품을 생산하도록 허가하자는 게 골자다.

(자료제공=SK지오센트릭)

◆재활용 원천기술과 노하우 울산에…대한민국 '순환경제'로

SK지오센트릭이 울산ARC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 짓는 이유는 국내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미래 먹거리가 될 플라스틱 재활용 분야의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국내 확보하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SK지오센트릭은 해외 파트너 기업들과의 기술협력, 지분투자 협업으로 3대 재활용 기술을 확보했다.

3대 기술을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 물류적인 이점 외에 어떤 장점이 있냐는 질문에 김 PM은 "각각의 개별 공정을 돌리려면 공장에 들어가는 유틸리티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한 유틸리티들을 하나의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통합적으로 운영, 유틸리티 사용량을 최적화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배출하고 있는 플라스틱을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단지를 구축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ARC는 SK지오센트릭이 그간 원유에 의존하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는 시작이다. '굴뚝 산업'의 대표 상징과도 같았던 화학기업이 쓰레기 문제 해결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창출 모델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가파른 성장이 기대되는 산업이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30% 이상 반드시 쓰도록 법제화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 재생 원료를 2030년까지 50% 이상 사용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40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 양은 1억톤에 이를 전망이다. 이와 관련,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이를 처리하는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규모가 2050년 6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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