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09.20 14:02
지난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지난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고인이 된 이건희 선대회장의 '동물 사랑'은 남달랐다. 진돗개 순종 보존을 비롯해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 애견문화 전파 등은 모두 이 선대회장의 주도 속에 이뤄졌다.

이 선대회장은 무엇보다 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국가 이미지 개선 ▲현대인의 정서 순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확산 ▲애견 문화 저변 확대를 통한 관련 산업 창출 등을 위한 뜻을 담는 등 남다른 철학과 혜안이 있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애견 사업의 출발…'진돗개 순종 보존'

첫 사업은 진돗개 순종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세계적으로 내로라 하는 여러 종류의 개를 키워 보면서 진돗개를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돗개는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순종이 없다는 이유로 우수성이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이 선대회장은 1960년대 말 진도를 찾아 거의 멸종 단계였던 진돗개 30마리를 구입했다. 10여 년 노력 끝에 순종 한 쌍을 만들어냈고, 진돗개 300마리를 키우며 순종률을 80%까지 올려놓았다.

진돗개 품종 보존을 이룬 뒤, 이 선대회장은 진돗개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에 직접 나섰다.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견종종합전시대회'에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직접 선보였고, 이를 계기로 진돗개는 1982년 '세계견종협회'에 원산지를 등록할 수 있었다. 또 200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 협회인 영국 견종협회 켄넬클럽에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이 선대회장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는 고인의 진돗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처음 들여온 30마리가 150마리로 늘어날 때쯤 순종 한 쌍이 탄생했고, 마침내 1979년 세계견종협회에 진돗개를 데리고 가서 한국이 원산지임을 등록시킬 수 있었다. 나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취미를 통해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이 선대회장은 진돗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뒤 사업에서 손을 뗐지만, 진돗개는 현재 한국 고유의 견종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지난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남다른 동물 사랑…'국가 이미지' 개선으로

이건희 선대회장의 진돗개에 대한 관심이 애견 사업으로 확장된 것은 '88 서울올림픽' 무렵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보신탕' 문제로 연일 시끄러웠다. 올림픽 이후에도 유럽 언론은 한국을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으로 소개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특히 영국 동물보호협회는 대규모 항의시위를 계획하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은 국가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당연한 것은 물론, 한국 상품 불매운동으로 연결되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고민 끝에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을 서울로 초청해 집에서 개를 기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완견 연구센터 등에 데리고 가 한국 '애견 문화'의 수준을 보여줬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영국 동물보호협회의 시위는 취소됐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항의도 없었다.

◆국내 첫 '안내견학교' 설립…장애인 포용하는 복지사회로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3년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를 설립해 '초일류 삼성'을 향한 변화의 첫 걸음을 사회공헌으로 시작했다.

그는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뜻에 따라 삼성은 1993년 국내 최초의 체계적인 안내견 양성기관인 '삼성안내견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은 ▲인명구조견(1995년) ▲청각 도우미견(2002년) ▲흰개미 탐지견(2003년) 등 개를 통한 CSR 활동을 확대해 갔다.  

또한 세계 속에 한국의 애견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도 앞장섰다.

1993년부터는 영국 왕실이 후원하는 애견대회인 크러프츠 도그쇼를 후원했다. 특히 2013년 대회에는 진돗개 '체스니(Chesney)'가 출전해 입상을 하는 쾌거도 거뒀다.

삼성은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토대 마련을 돕기 위한 안내견 양성과 함께, 안내견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정부와 국회도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해 함께 나서면서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도적인 변화가 이어졌으며, 안내견 양성을 위한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19일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안내견들과 시각장애인 파트너,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박태진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교장. (사진제공=삼성전자)
19일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안내견들과 시각장애인 파트너,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박태진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교장. (사진제공=삼성전자)

한편, 삼성은 19일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퍼피워커'(안내견이 될 강아지를 돌봐주는 자원봉사자)와 시각장애인 파트너, 은퇴견 입양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내견 사업 3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시각장애인 파트너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등도 함께 했다.

기념식에서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안내견 사업에 대한 신념, 안내견 사업 이후 사회 변화 등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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