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은지 기자
  • 입력 2023.10.31 11:50

'55년 무파업' 전통 이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책임감 갖자"에 노사 모두 공감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웍스 DB)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정은지 기자] 지난 55년간 멈추지 않고 흘렀던 포스코의 쇳물이 끊길 뻔했다. 1968년 창사 이후 첫 총파업이라는 갈림길에 섰던 포스코 노사는 31일 아침, 서로의 손을 잡았다. 

포스코 노사는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24회에 걸쳐 회사 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협상(임단협)을 진행했지만, 양측의 입장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포스코 노동조합원은 이달 28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파업 찬반 투표에서 '파업 찬성'에 표를 던졌다. 

파업을 피할 마지막 기회는 30일 열린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단체교섭 조정회의였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자정을 넘길 때까지 좀처럼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며 난항을 이어갔던 공방은 다음 날 새벽 3시부터 차츰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의 시작 17시간 만인 31일 오전 8시경 극적으로 타결됐다.

잠정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기본임금 10만원 인상(자연상승분 포함 17만원 수준) ▲주식 400만원 지급 ▲일시금(비상경영 동참 격려금) 250만원 ▲지역상품권 50만원 ▲격주 4일 근무제도 도입 등이다. 해당 안에 대해 조합원들이 찬반투표를 실시, 과반수가 찬성하면 포스코 노사는 올해 임단협 교섭을 최종 타결하게 된다.

예고됐던 총파업을 벼랑 끝에서 막은 것은 중노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통상 중노위원들이 조정회의를 이끌어가지만, 이날은 김태기 중노위원장이 이례적으로 현장에서 직접 중재에 나섰다. 그리고 포스코 노사는 한 발씩 양보했다.

포스코 임단협의 산파가 된 김태기 중노위원장에게 숨 가빴던 극적 타결의 막전 막후를 물었다. 

-밤새 고생이 많았다. 쟁점은 무엇이었나.

"무엇보다 쟁점은 임금이었다. 노사 양측의 격차가 너무 컸다. 노조 측은 임금 인상의 기대 수준이 높았고, 사측은 이런 기대 수준을 100% 채워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임단협 타결에는 회사가 양보를 많이 했다. 기본급을 9만원 수준에서 10만원으로 올렸다. 이는 노조도 회사의 노력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노조도 많은 양보를 했다. 성과급 차원인 일시금이 바로 그것이다. 노사 양측이 서로서로 양보를 한 것이 타결로 이어졌다."

-24차례나 협상할 정도로 양측 입장이 강경했다. 어떻게 양보를 이끌어 냈나.  

"극적 타결의 배경에는 '포스코맨'이란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을 깨지 않겠다'는 생각이 노사 모두에게 있었다.

24차례나 되는 협상과 사전 조정 등이 있었던 것은 결국 합의를 끌어내고, 일터로 돌아가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코 노조는 일반 노조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바로 포스코맨이라는 자부심이 양보를 통한 합의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조정회의에 중노위 위원장이 직접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데.

"일반적으로 중노위 조정회의는 위원들에게 맡기는 게 맞다. 그러나 55년간 파업 없이 이어진 포스코 노사 관계의 상징성, 그리고 안정이라는 전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스톱'시켜서는 안 되는 협상이었다. 특히 포스코가 총파업에 들어간다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컸다. '이건 챙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조정회의가 17시간 동안 이어졌던 것은 타결이 너무나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할 만큼 해봤는데 어려워 보인다'라는 현장의 전언을 받고, 오후 10시에 회의장에 도착했다.

물론 위원장이 왔다고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도착한 뒤에도 몇 차례 결렬 위기를 맞았지만, 성심성의껏 측면 지원을 하며 타결을 유도했다.

노측과 사측을 각각 면담하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줬다. '할 수 있다. 책임감을 갖자'라고 독려했다."

-분쟁을 조정하는 수많은 자리를 지켜봤다. 노사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노사 양측에 하고 싶은 말은 100점짜리 협상은 없다는 것이다. 협상은 그런 것이다. 타결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도 있지만, 성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 것이다.

자신의 이득 만을 모두 가져가려는 것은 협상이 아니다. 배려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노사 모두 길게 보고 갔으면 한다. 단계적으로 목표를 잡고,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는 게 바로 참다운 협상이 아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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