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10.31 12:24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창사 55년 만에 첫 파업의 기로에 섰던 포스코가 노사의 극적인 합의로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 196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파업위기를 맞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조정으로 노사가 한발씩 물러서면서 우려했던 파업은 기우로 끝날 것으로 보여서다. 이번 합의는 파업에 대한 지역사회 우려 등을 고려해 노사가 최대한 양보한 것도 칭찬할 만 하지만, 김태기 중노위 위원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 '55년 무파업' 전통을 이어가도록 만든 것은 무엇보다 돋보인다.

실제 이번 합의 과정에서는 김 위원장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포스코 노조 집행부 70% 정도가 강성 민주노총 출신이라 자칫 파업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 30일 오후 3시 시작해 17시간이 넘는 릴레이 회의를 진두지휘하며 중재에 앞장섰다. 중노위 위원장이 조정회의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포스코 노사는 지난 5월부터 2023년 임금 및 단체협상에 들어가 24차례의 교섭을 벌였지만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28~29일 이틀간 투표를 통해 75.07%(조합원 1만1145명 중 8367명)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했고, 이어진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는 찬성 8367명(77.79%)·반대 2389명(22.21%)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협상 과정에서 노사의 간극은 컸다. 노조는 기본급 13.1% 인상, 조합원 대상 자사주 100주 지급, 성과 인센티브(PI) 제도 신설, 중식비 인상 등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추가 소요 비용이 직원 1인당 약 9500만원(전체 약 1조6000억원) 달하는 수준이라며 난색을 표해 왔다. 특히 사측은 올 들어 철강 시황이 악화되고 있는데다 협력사 등과의 임금 격차 등을 고려해 기본임금 평균 15만원 인상(공통 인상률 8만원 포함), 주식 400만원 한도에서 1대1 매칭 지급, 중식 무료 제공(중식비 12만원은 기본임금에 추가)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노위, 특히 김 위원장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김 위원장은 포스코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안정적인 노사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파업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호소했다. 이와 함께 포스코와 포항시가 당면한 어려움을 거론하며 포스코와 지역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지금은 파업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앞세워 노사를 설득했다. 실제 포스코는 지난해 여름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포항제철소 공장이 흙탕물에 잠겨 전체 공정이 중단되며 2조원의 피해를 봤고, 지금도 국내외 경기침체, 전기료 인상 등으로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다. 또 포스코의 1~2차 협력 업체만 2만7000곳에 달해 만약 파업을 하면 협력사 직원과 가족 수만 명이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철강을 소재로 쓰는 자동차·조선·건설·기계·가전 등 수많은 산업의 연쇄적인 생산차질도 우려되는 상태였다.

김 위원장의 진정성 있는 중재, 무엇보다도 "책임감을 갖자"는 호소는 노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쟁의행위 특성상 강대 강 대결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았지만, 한평생 노사분쟁을 연구해 온 노동경제학자답게 일목요연한 논리로 노사를 설득한 것이 '통 큰 합의'를 이끌어 냈다.

김 위원장의 통찰력과 식견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이런 식견이 불투명한 노사관계를 바로 잡고, 지금도 돌고 있는 파업시계를 멈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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