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11.02 13:00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지난해 한국 배터리 산업을 평가하면 결론은 밝았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계속 밝다. 지난해 K배터리 3총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매출은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70조원을 돌파하며 순조로운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는 상황에도 올해 3총사 실적이 고공행진하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에 대규모 시설 투자에 나서면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CRMA(핵심원자재법)에 따른 혜택이 덩달아 늘었기 때문이다.

몸집 키우기에 성공한 삼총사의 속사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잡하다. 제자리걸음 중인 글로벌 점유율 때문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업체 3사가 올해 1월에서 8월까지 51.5%에서 60.5%로 성큼 올라서는 동안 국내 기업은 고작 23.2%에서 23.4%로 0.2% 높아지는데 그쳤다. 우선 증가율 정체가 우려된다. 더 큰 문제는 두 배 이상의 격차다. 향후 좁혀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도 수두룩하다.

IRA와 CRMA가 국내 삼총사에 계속 도움이 되는 규제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손사래 친다. IRA의 경우 미국 완성차 업체는 미국정부 눈초리를 피해 중국 배터리 업체와 손을 맞잡고 있다. 중국 정부도 12월부터 '흑연수출 통제' 규제로 미국·유럽에 대항하겠다 하지만, 정작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양국에 어떻게 투자할까만 고민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 정부가 의도한 중국 견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일까.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그저 양국 정부간 싸움으로 보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CRMA도 똑같은 수순을 밟을 우려가 높다. 

그렇다면 국내 삼총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적당히 의지하고, 적당히 자립해야 한다. 속된 말로 치고 빠져야 한다. 삼총사의 활발한 북미와 유럽 투자 덕분에 IRA·CRMA의 혜택이 좀 더 많아지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의지하려는 시도는 곤란하다. 

최근 기자가 만난 배터리 업계 관계자의 말이 묵직하게 들렸다. 그는 "언젠간 한국 배터리 업계를 견제하는 제도가 나올 수도 있죠"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양대 규제가 생긴 본질적 이유는 '자국 산업 도모'로 요약된다. 이 의미를 차분히 새기면서 또 다른 배터리 수요와 관련 생태계를 찾아야 한다. 날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의 점유율 격차 감소도 발등의 불이다. 신제품 개발과 기술력 제고, 원가 절감, 생산성 향상을 통해 K배터리의 대내외 경쟁력을 높이면서 신흥시장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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