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4.03.29 19:51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제공=효성)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제공=효성)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50년 이상 효성그룹을 이끌며 한국의 섬유산업을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기술자의 눈과 머리가 깃든 '기술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세계 1위라는 성공을 이뤘다. 

29일 효성그룹은 조석래 명예회장이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35년 11월 경남 함안군에서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경기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히비야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고인이 향한 곳은 미국이었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초 그는 박사 과정을 준비하며 학자의 길을 꿈꿨으나, 부친의 부름에 따라 1966년 귀국해 효성의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3녀인 송광자 씨와 결혼해 슬하에 3형제(조현준·현문·현상)를 두었다.

당시 동양나이론 건설본부장을 맡아 울산공장 건설을 진두지휘하며 현장 경험을 쌓은 고인은 1970년 효성그룹의 주력사인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사장을 시작으로 동양폴리에스터를 세웠고, 한영중공업을 인수해 효성중공업으로 재출범했다. 더불어 1971년 국내 최초의 민간기업 연구소인 '동양나일론 기술연구소'를 세워 한국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높였다.

고인은 부친 별세 2년 전인 1982년 회장에 취임하고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다. 특히 화섬 산업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유화학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그룹의 경쟁력을 배가했다. 동시에 금융기기(ATM)와 중대형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에 적극 참여하면서 정보통신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효성의 대표 상품인 스판덱스는 기술 효성의 진가를 높인 결정체다. 스판덱스는 높은 신축성으로 섬유의 활용성을 크게 넓힌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폴리에테르와 메틸렌디페닐이소시아네이트를 중합한 소재로, 고무실의 약 3배의 강도가 있고, 원길이의 5∼8배나 늘어날 수 있으며, 고무줄보다 가볍고 내노화성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

경쟁사는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였다. 듀폰은 1958년 스판덱스를 첫 상용화해 시장을 장악했지만, 효성은 1992년 독자 기술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한 이후 약 20년 만인 2010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또한 효성은 스판덱스에 머물지 않고, 탄소섬유와 폴리케톤 등 신기술 개발을 선도해 나갔다.

고인은 효성그룹 회장에 머물지 않고 재계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장,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와세다 대학 한국동창회장(현 한국교우회),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교 재단 이사를 역임했다.

1971년 수출유공 대통령 표창,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1994년 한국경영자 대상, 2009년 일본 정부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또한 2005년 대한민국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명예공학박사를, 2013년에는 일리노이 공과대학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편,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 회장, 차남 조현문 미국 변호사, 3남 조현상 효성 부회장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회사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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