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0.28 10:18
Johannes Vermeer <Woman Holding A Balance> 1665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저울질하는 여인’을 보고 있으면 공간에 가득 찬 고귀함이 느껴진다. 아련하게 빛나고 있는 여성의 코끝과 하얀 머릿수건, 손끝에서까지 빛나고 있는 빛의 고임새, 창문 틈과 커튼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어오는 빛의 효과가 놀랍도록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 그림 가운데 단 한 군데라도 날카롭거나 불안한 부분이 없다. 화면 가득한 빛과 조화로움이 놀랍도록 고귀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른 배의 여인은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무언가를 재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두터운 상의 소매를 걷어올려 재야만 했던 것은 무엇인가? 한 쪽으로 열린 상자를 보면 줄줄이 이어진 진주가 걸려 있다. 그렇다면 여인은 진주를 재고 있으리라. 가장 귀한 것을 재느라 따뜻한 옷을 걷어올리고 숨을 죽이며 균형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이 그림은 배경으로 보이는 ‘최후의 심판’ 그림을 통해 해석되어 왔다. 그것 때문에 이 그림은 기독교 사상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죄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많았다. 부른 배로 보이는 온화한 여성 때문에, 구세주를 세상에 내어보낸 성모 마리아가 인간의 죄를 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 혹은 원죄의 결과로 임신하게 된 여성이 자신의 죄를 재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주된 해석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그림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등장했다. 여인이 재고 있는 것은 진주가 아니었다. 저울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져있지 않았다는 것을 현미경 분석으로 밝혀낸 것이다. 이제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한다.

인생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어가는 일이 아닌가. 바람만 불어도 몹시 흔들리는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는 균형의 때를 숨죽여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신은 이 세상이 항상 평화롭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이 고통과 시련과 두려움과 서러움 가운데 강하게 살아가도록 했다. 삶의 풍랑 가운데 나타나는 잠잠한 기쁨의 순간이 더욱 아름답도록 했다. 베르메르는 이 그림에서 삶의 흔들림이 잦아들고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기다림의 순간을 표현해 본 것이 아닐까?

잠시 흔들릴지라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힘, 있어야 마땅한 자리를 지키는 이에게 고귀함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이러한 인생의 품위는 결국 균형에서 나온다.

인생은 늘 아슬아슬해서 험난하지만 인생은 아슬아슬해서 더욱 아름답고 그렇게 살아남은 인생은 어쩔 수 없이 더욱더 고귀하다. 베르메르는 오늘날까지도 아슬아슬한 모든 인생들을 위해 저 놀라운 그림을 남겨 주었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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