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1.14 09:18

검은 상복의 여자 하나가 벽난로 위의 사진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힘없이 지켜보는 사진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표정은 힘이 없지만 사진에서 눈길만큼은 떼지 못한다. 여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이제 만날 수 없다. 그래서 더 이 사진 하나만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여자는 그리움에 매달린다. 그리움은 너무나 아픈 것이지만 이 그리움에 매달려야만 그의 얼굴을 겨우 볼 수 있다.

George Goodwin Kilburne <Absence>

영국의 풍속화가 조지 굿윈 킬번(George Goodwin Kilburne, 1839~1924)의 ‘부재 Absence’는 사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처음에 판화가로 미술을 시작했고 이어 유채화와 수채화로 영역을 넓히면서 사랑받게 되었다. 그의 그림 중에서는 남녀 간의 애정과 이별을 주제로 한 것이 종종 나타난다. 이 그림은 그러한 이별 그림 중에서도 죽음을 주제로 하여 특히 애처로운 작품이다.

이별과 죽음은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것은 고통이다. 죽음에는 결코 되돌릴 수 있는 이별이 있고, 이별에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있다. 이별을 겪은 사람은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으리라 괴로워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그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만은 정확하다. 사랑은 대단하고 놀라운 것이지만 사랑의 감정이 인간보다 크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감정이 들지만 사랑의 감정이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그걸 알고 나면 사랑을 더욱 감싸안게 되고, 사랑은 훨씬 담담해진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강인함이며 사랑의 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진실한 사랑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파멸로 이끌지 않는다. 인간을 죽을 것처럼 괴롭히더라도 결국에는 인간을 살리는 것, 그것만이 사랑이다.

그림 속의 여인은 사랑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결국 사랑 때문에 살아갈 것이다. 사랑은 사람을 결국 살아가게 한다.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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