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1.24 09:53

가까운 사람의 삶에 혹독한 시기가 찾아와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어려워할 때가 있다. 그러한 때 나는 함께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들어주며 무엇이라도 해 주고파 하지만, 마음이 어려운 사람은 그것조차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누군가의 삶에 좋은 시기가 찾아와 잘 안 풀리는 나를 멀리할 때가 있다. 그러한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므로 섭섭함을 안고 내 자리를 지키며 속수무책으로 멀어지는 누군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인생에는 각각 다른 시간 줄이 있어 같은 물리적 시간에도 다른 삶의 계절이 찾아온다. 나에게는 풍족한 여름이어도 그에게는 배고픈 겨울인 시기가 있다. 나에게 눈 내리는 겨울이어도 누군가에게는 꽃 피는 봄인 시기가 있다.

여기 여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한 그림 한 장이 있다. 펠릭스 에두아르 발로통의 ‘절벽과 흰 해변, 바주이’ 제목으로만 보아서는 흰모래가 가득한 여름의 해변가 같지만, 그냥 그림을 보았을 때는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의 해변가 같다.

Félix Edouard Vallotton, ‘The cliff and the white beach, Vasouy’, 1913

이 그림의 제목을 알지 못하고 그림을 만났을 때, 영락없이 두 사람은 눈 쌓인 언덕을 걸어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그림의 제목을 알면 두 사람이 하얀 백사장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릇파릇한 초록빛으로 채워진 절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이 그림에서는 두 계절이 교차하는 것 같다. 이 초록빛이 겨울에도 푸르른 침엽수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미묘한 공간에서 두 사람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 형상은 정확하지 않지만 비슷한 키에 비슷한 체형, 양 어깨에 가방을 메고 모자를 쓴 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닮음은 두 사람이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꼭 친구라고 명명할 수 없더라도 가까운 사이임인 것만은 분명하다.

펠릭스 에두아르 발로통(Félix Edouard Vallotton,1865~1925)은 스위스 중류 계급 출신으로 1882년 십 대 중반의 나이에 파리에 유학을 와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아카데믹한 그림 스타일을 배웠으며 루브르 박물관에서 홀바인, 뒤러, 앵그르 등의 고전적인 작품들을 감상하기를 좋아했다. 이러한 취향은 탄탄한 회화적 기초로 쌓였으며, 이후 그의 연이은 작품 스타일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확한 형태력과 묘사력의 기반이 된다. 발로통은 빠르게 많은 그림을 그렸을 뿐 아니라 미술 비평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스물여섯 살 경에 시작한 목판화와 에칭 분야에서도 성과를 보인다. 이러한 작업의 확장은 다시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져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그림 스타일을 시도하게 된다. 발로통은 다작 화가였고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인상주의적 그림, 야수주의적 그림, 초현실주의적 그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결국 그는 기존 미술계에 등을 돌리고 나비파(Les Nabis), 즉 인상주의에 대항하고 물질주의의 한계에 의문을 가지며 시작된 미술 사조에 몸담는다.

이 그림에는 그의 회화적 특징인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유화 스타일이 묻어있다. 단순화된 형태 덕분에 그림의 색채는 더욱 넓고 강렬하게 빛나고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나는 이 흰 빛이 충분히 중의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에 놓인 다른 계절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함께 걷고 있지만 다른 계절을 겪어가고 있는 사람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둘은 적절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함께 오래 가려면 그이의 겨울도 버텨주어야 한다. 그 시기에 함께 겨울을 겪으며 최선을 다해 그 추위를 감싸줄 수 있거나, 또 다른 삶의 이유로 그 추위에 잠시 잠깐 떨어졌다 다시 돌아올 수 있거나, 나의 여름을 통해 그의 겨울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줄에 따라 각자의 계절을 살아가다 보면 또다시 함께할 수 있는 시절이 온다. 어떤 방식으로든 맞아떨어지는 그 사람의 타이밍과 내 인생의 타이밍, 그것이 '인연'이라는 것이 아닐까?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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