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1.08.24 11:00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실거주 의무 이어 '2% 종부세'도 폐기…실수요자 '내 집 마련' 수요 부응할 때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항공뷰 <사진=네이버지도>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항공뷰.(사진=네이버지도 캡처)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화로 인해 아파트 소유주들은 전·월세를 줬던 집에 들어와 살기 위해 인테리어에 수천만 원을 들였고 많은 세입자는 쫓겨나야만 했다. 막상 해당 법이 백지화되면서 소유주는 소유주대로 돈만 쓰게 됐고, 세입자들은 억울하게 떠나는 상황만 초래했다."

대치동에서 공인 중개사를 하는 A씨는 이 같이 말하며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던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규제가 전면 철회되면서 주택 실수요자들의 속을 태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당정의 일관성 없는 정책 뒤집기에 서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투기를 없앤다는 목적으로 고민 없이 성급하게 마련된 규제 정책이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부딪혀 뒤늦게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정책 번복은 일상이 됐고 그 사이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지난해 6·17 대책에서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에 2년 이상 실거주해야 조합원 입주권을 주기로 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는 대치동 학원가 접근성으로 인해 전세수요가 꾸준했던데다 지은지 오래돼 집주인 실거주 비율이 낮았다. 갑작스럽게 생긴 규제로 집주인들이 계약갱신권을 행사하려는 세입자를 내보내고 본인이 실거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런 혼란이 1년 이상 계속된 끝에 당정은 7월 13일 실거주 2년 의무 법안을 전면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세입자만 내쫓는 정책'이란 비판을 마지못해 수용한 결정이란 평가가 나왔다. 정책 뒤집기가 알려진뒤 억지로 은마 아파트 등 재건축 단지에 실거주 해 온 집주인이 다시 이사를 하고 전세 매물을 내놓고 있다. 

덕분에 애꿎은 세입자들의 피해만 늘어가고 있다. 지난해 7월 말 시행된 임대차2법에 따라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챙사해 2년 더 살 수있게 됐다. 다만 예외 조항으로 집주인이나 직계 가족이 실거주한다고 하면 갱신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은마 아파트 이전 세입자는 갱신권 행사를 못하고 다른 집을 구해야만 했다.

같은 아파트로 재입주하고 싶다면 이전 임대료 대비 5%가 아닌 2배를 더 얹어줘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실거주 의무가 없어진 집주인들은 전용 76.79㎡ 신규 전세 매물을 보증금 8억~9억원 선에 다시 내놨다. 같은 면적의 은마 전세 갱신 계약의 경우 지난 7월 시점 기준으로 4억~5억원에 가격이 형성됐다. 갱신계약은 이전 임대료의 5% 이내로 올려야 하기 때문에 신규계약과 가격차가 2배 가량 벌어진 것이다. 전용 84.43㎡는 9억~10억원에 신규계약을 할 수 있다. 갱신 계약은 5~6억원 사이다.

집주인이 이전 세입자와 재계약을 했다면 4억~5억원 낮은 가격에 갱신계약을 체결했겠지만 신규로 매물로 내놓으면서 가격을 2배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세입자만 더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실효성 없는 규제 정책"이라며 "집값도 잡지 못하고 전세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애초 이 법안을 안 만들었으면 집값 부추기는 역할은 안했을 것"이라며 "전세민들 역시 안 쫒겨나게 됐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영진 기재위 조세소위 위원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 캡처)<br>
김영진 기재위 조세소위 위원장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 캡처)

민주당에 끌려가던 정부도 모양새 구겨

이 같이 집권 여당이 무리하게 추진해 온 부동산 입법이 잇따라 철회되면서 막대한 시장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당정이 설익은 대책으로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가 번복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앞선 재건축 실거주 2년 의무 백지화와 함께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축소 재검토, 상위 2% 종부세 부과 개정안 폐기 등 두 달 사이 부동산 정책을 세 번이나 철회하거나 바꾸었다. 

대부분 여당 의원들이 입법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데다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와 야당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입법 독주가 만들어낸 '예고된 참사'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19일 국회 기재위 소위에서 당초 당정협의로 발표됐던 상위 2% 종부세 부과 개정안이 전격 폐기됐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발의 당시부터 사사오입 논란을 낳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엔 납세자들의 반발이 초래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조세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상대적 비중(%) 기준이라고 비판했다. 조세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 심사 자료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납세순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더해졌다.

하지만 민주당 내 종부세 완화 방안 논의는 일부 강경파 의원들의 반발 탓에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당 부동산특위의 한 관계자는 "기준선을 2%로 하든 12억원으로 하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며 "종부세 완화를 강경파들에게 설득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고 전했다. 

경제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종부세 개정안을 놓고도 이념 대결에 함몰된 탓에 실제 제도의 적용 가능성은 전혀 검토하지 못한 셈이다. 2% 부과안이 이 같은 졸속 논의의 결과물이었지만 기재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당론을 뒤집을 수 없다는 부담감 탓에 2개월째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법안을 야당에 설득하느라 고초를 겪었다.

내부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입법이라고 여기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여당에 찬성 의견을 내며 끌려가던 정부도 결국 모양새를 구겼다. 특히 정부의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으로 인해 앞으로도 공시가 상승률은 계속 상승할 수 밖에 없어 향후에도 같은 논란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을 비롯한 국회가 '오락가락'을 거듭한 끝에 종부세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면서 안 그래도 요동치고 있는 부동산시장이 더욱 과열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가주택일수록 혜택이 커지는 공제금액 상향에 따라 단기적으로 '똘똘한 1채'와 '강남 쏠림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뉴스웍스와의 연락을 통해 "신축, 정비사업지, 교통망 확충예정지 등 알짜 입지의 똘똘한 한 채 선호현상은 1세대 1주택자 세부담 경감 요인 등과 겹쳐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며 "향후 시세반영률을 높인 공시가격 추가 인상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긴 하나, 규제지역이나 부동산 과다보유자가 아닌 1주택자에 대한 세부담 속도조절에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 '세금 압박이 커지더라도 버티면 된다'는 시그널을 준 셈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각종 부동산 정책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정부도 이번 종부세 완화안이 집값 안정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지난 19일 국회 기재위에서 김경협 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종부세를 완화했을 때 집값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분석해봤느냐'고 묻자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집값 안정 측면만 본다면 공제금이 올라가는 것은 아마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답변했다.

김진표(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위원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부동산특위'회의에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김진표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김진표(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위원장이 지난5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부동산특위'회의에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김진표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 '원점 회귀'

정권 말에 접어들며 여당이 무리하게 추진했던 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는 점도 주목된다. 

민주당의 종부세 개편안과 함께 발표됐던 임대사업자 혜택 폐지 방안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부동산특위는 지난 5월 부동산 감세에 대한 당내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훨씬 강력한 증세안인 임대사업자 혜택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며 야심 차게 도입한 제도를 여당이 직접 폐기하겠다는 강경 대응으로 주목을 받았다. 

민주당은 임대사업자 보유주택을 시장에 내놓아 서민들이 사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로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불과 4년 전 정부의 약속을 믿고 제도에 가입했던 임대사업자들이 격렬히 반발했다. 또한 임대사업자들이 급하게 주택을 처분하면서 갑작스레 오갈 곳이 없어진 서민 세입자들이 오히려 웃돈을 주고 전셋집을 구해야 했다. 이에 여론 부담을 느낀 민주당은 한 발 물러선 상황이다. 

공식적으로는 당정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대선을 7개월여 앞둔 시점에 임대사업자 혜택 폐지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공부문이 제시하는 정책은 시장이 예측가능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방향성 자체가 쉽게 흔들리는 만큼 시장의 신뢰를 잃게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매시장과 임대시장은 별개의 시장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고 공공이 공급하는 주택이 양쪽 시장을 대체하는 식의 정책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면서 "민간의 임대주택 공급기능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임대사업자 양도세 관련해서 발생한 혼란은 상당부분 이같은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추후로도 매매와 임대시장을 별개로 보고 민간의 주택공급기능을 경시하면 안 된다"고 전했다.

소득세 수입 증가분의 67%는 양도소득세 수입…부동산 관련 양도소득세 증가분 7.3조 

올해 상반기 세수는 작년 상반기보다 약 49조원 더 걷혔다. 49조원 가운데 20조원은 소득세 증가분이었다. 특히 소득세 가운데에서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거래 증가에 따른 양도소득세가 7조3000억원이나 더 징수됐다.

'임대차 3법', '양도세 중과' 등 정부의 부동산 정책 탓에 집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서민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주범인 집값 상승에 정부 곳간만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서민 고통 속에 늘어난 세수로 재난지원금 등 선심을 베풀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동향 및 이슈'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세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48조8000억원 더 걷혔다. 기획재정부측은 작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세금 납부를 유예하거나 올해로 이월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세제 정책으로 올 상반기 13조3000억원 세수가 더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세수 증가는 집값 상승의 역할이 크다. 올해 상반기까지 소득세 수입은 60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9조4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소득세 수입 증가분의 67%는 양도소득세 수입이었다. 특히 부동산 폭등에 따른 거래와 양도차익 증가로 부동산 관련 양도소득세 증가분이 7조3000억원에 달했다. 증권 거래에 따른 양도세 증가분도 2조2000억원에 달했다.

경기 회복세로 법인세 10조4000억원, 부가가치세 5조1000억원이 더 걷혔지만 세수 증가분의 대부분이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었던 셈이다.

결국 부동산 폭등과 주식 시장 활황 등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자산 시장이 커지면서 세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통합재정수지는 47조2000억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적자 폭은 작년 동기 대비 42조8000억원이나 줄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빼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79조7000억원 적자로, 1년 전에 비해 30조8000억원 줄었다.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우선 종부세 세수증가는 명확히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것"이라며 "여기에 더해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가격상승의 원인을 부동산정책으로 가정한다면 가격상승에 비례해 증가한 세수가 확실히 맞다"고 평가했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정부의 양도소득세 정책을 살펴보면 너무 잦은 변경, 너무 과중한 조세부과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정부가 늑대만큼 무서운 세금을 부과하고자 할 때에는 조세정의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해 조세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실거주 2년 의무 거주 폐지,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유지, '2% 종부세' 폐지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국민의 바람이나 시장의 요구와 거리가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탁상행정의 표본이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며 "당정은 면밀한 시장 분석을 통해 정책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실수요자 내 집 마련 수요를 막고 임차인을 외곽으로 내모는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아야 한다"며 "정부와 여당은 몇몇 정책의 '생색내기' 시정이나 '보여주기'식으로 민심을 무마하려 하면 안 된다. 부동산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시장 안정은 요원하다. 당정은 다시 체계적이고 면밀한 시장 점검과 분석을 통해 예측가능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패한 정책에 대해선 과감히 폐지하거나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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