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1.08.18 05:30

이정 "법정근로시간 월·년 단위로 탄력 운영 필요"…박기성 "대체근로 허용하고 직장 점거 금지해야"

1950년대 경성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진제공=영등포문화원)
1950년대 경성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진제공=영등포문화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한다. 물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100세 시대'다. 우리나라 65~69세 노인 10명 중 5명 이상이 경제활동을 한다. 엄연히 현역이다. 나이 들었으니 청년들에게 자리를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옛날이야기다. 

문제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전의 방식을 고집하고, 당시 잣대를 들이대면 소위 말하는 '꼰대'다. 컴퓨터가 있는 현 시대에 아직도 주판을 사용하며 '컴퓨터 계산은 못 믿겠다'고 하는 꼴이다. 이러한 '변화 부적응자'들은 조직 전체의 활력을 좀먹는다. 

한국 노동법은 인간으로 치면 노인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지난 1953년 처음 제정·시행됐으니 벌써 만 68세다. 당시 전국적으로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자 미군정이 일본 노동법을 베껴 만들었다. 이후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자잘한 변화가 있었지만, 제조업 중심의 '공장법'이란 큰 틀은 유지됐다. 주휴수당, 대체근로 금지 등 케케묵은 조항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첨단산업 발전으로 노동 환경이 크게 달라졌지만 국내 노동법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관련 제도를 손본 주요 선진국들과 대비된다. '꼰대법'이란 오명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 52시간제 관련 이미지. (사진제공=알바몬)
주 52시간제 관련 이미지. (사진제공=알바몬)

◆"주 52시간제? 개발자·전문직 근로시간 통제는 '난센스'"

현행 노동법은 공장 노동자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특정한 장소에서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쉬는 지가 최대 관심사다. 주말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이에 따른 정당한 임금도 받지 못했던 당시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됐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말 그대로 일주일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52시간이라는 상한선은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과 노사 협의 하에 가능한 최대 연장근무시간 주 12시간을 합해 나왔다. 계도기간을 거쳐 대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됐으며, 7월부터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제가 시행됐다. 

대다수의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일하거나, 사무실에서 주어진 업무를 규칙적으로 일하는 경우 주 52시간제 운영은 합리적이다. 우리 사회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폐단을 잘 알고 있다. '제2의 전태일'을 바라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모든 노동자의 근로 환경이 획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근로시간이 곧 성과로 직결되는 제조업과 달리, 창의적 업무를 하는 지식·문화산업 종사자의 근로시간은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게임 개발자 등 IT 인재, 변호사·변리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등이 대표적 예다. 본인 재량에 따라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그 성과에 부합한 대가를 받는 이들에게 주52시간제는 일종의 족쇄 역할을 한다.

이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식근로자나 전문직 등은 보통 성과에 따라 돈을 받는다. 목표 달성 여하에 따라 연봉이 달라진다. 이들의 근로시간을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근로시간 책정도 어렵다. 가령 신문사 논설위원의 근로시간은 어떻게 책정하는가? 이들은 산책하면서도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선진국들은 어떨까. '스타트업 천국'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면제 근로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정 부서를 총괄하거나, 창의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근무시간 규제에서 벗어난다. 재량권을 갖고 일하는 근로자나 최저임금의 2배 이상 받는 근로자도 근무시간을 제한받지 않는다. 

독일은 '근로시간 계좌제'를 도입했다. 실제 근로시간이 근로계약에서 규정한 근로시간을 초과하면 초과한 만큼 휴가 기간을 늘리고, 미달하면 기업이 요구할 때 미달시간만큼 초과근로 해 정산하는 제도다. 은행에 돈을 저축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것처럼 근로자 노동시간도 정해진 총량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영국엔 '옵트아웃' 제도가 있다. 안전 관련 직종을 제외하면 누구나 옵트아웃을 선택한 뒤, 법정근로시간인 주 48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했지만 유연함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주 단위로 근로시간을 규제하지만, 일본은 월·년 단위로 따진다. 일본의 연장근로 한도는 월 45시간, 연 360시간이다. 노사합의 시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늘어난다. 최대 주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할 수 있는 우리나라보다 좀 더 융통성 있게 운용된다.

이정 교수는 "주 52시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삶의 질과 워라밸이 중시되는 만큼 근로시간은 줄어드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융통성이 없다. 보완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주 단위로 연장근로를 규제하지 말고, 일본처럼 월·년 단위로 확대하는 등 탄력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휴수당 관련 이미지. (사진제공=고용노동부)
주휴수당 관련 이미지. (사진제공=고용노동부)

◆주 5일 하루 3시간씩 일해도 1일분 급여 더 주어야…일본은 1990년대 폐지

근로기준법 제55조 제1항에 따라 우리나라 사용자들은 소정의 근로시간(주 15시간 이상)을 채운 노동자에게 주 1회 이상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한다. 주휴수당은 이 유급휴일에 근로자가 받는 임금을 뜻한다. 실제로 일하지 않은 하루치 급여를 더 주도록 한 것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존재해 온 주휴수당은 대표적인 '낡은 제도'로 꼽힌다. 당시에는 근로자 대부분의 임금 수준이 낮고, 최저임금도 도입되지 않아 타당성이 있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하려면 주휴수당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주 5일 근무가 확산되면서 점차 주휴수당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 공무원부터 없애자고 주장할 정도다. 정석은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근로감독관은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논문에서 주휴수당 폐지를 주장하며 "주휴일(주휴수당을 받는 유급휴일)은 근로 제공 의무에서 벗어난 시간이다. 현실의 근로 제공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주휴일엔 임금이 발생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고려했던 '생활이 열악한 근로자의 휴일 보장'은 이제 개별 사용자에게 맡길 게 아니라 최저임금제와 근로장려세제 등을 통해 국가가 책임지는 수순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주휴수당 지급을 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터키, 대만 등 극소수다. 터키의 경우에도 주 45시간 이상 근무한 경우만 주휴수당을 지급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일본도 1990년대 들어 주휴수당 제도를 폐지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주휴수당 제도로 사업주는 직원이 주 5일 하루 3시간씩만 일해도 1일분 급여를 추가 지급해야 한다. 일반 사람의 상식과 맞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구시대 유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주휴수당 제도를 극단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은 물론 불가능하다. 멀쩡히 받던 돈이 사라지는 데 누가 동의할까. 기존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고, 더 이상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전면파업에 돌입한 현대중공업 노조. (사진제공=현대중공업 노조)
지난달 전면파업에 돌입한 현대중공업 노조. (사진제공=현대중공업 노조)

◆대체근로 불허·직장 점거 묵인…'기울어진 운동장' 개선해야

경영계는 국내 노동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주장한다. 노동자의 단결권은 보장하지만, 그 대척점인 사용자의 대항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대표적으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여부가 있다. 우리나라는 노조 파업 시 회사가 다른 근로자를 고용해 생산을 이어가는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한다. 노동법이 처음 제정된 1953년부터 줄곧 금지해 왔다.

이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시작하면 사업장이 '올스톱'된다. 사용자는 대항할 방법이 없다. 노조 입장에선 버티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다. 

OECD 회원국 중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은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가 명확히 금지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시설을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된 시설'로 한정하고 있지만, '주요 업무시설'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실질적으로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허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직장 점거를 묵인한다는 것이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는 노동법 관련 세미나에서 "쟁의 시 대체근로와 도급을 금지하는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노사 간 무기 대등의 원칙에 따라 대체근로 허용, 직장 점거 금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대환 일자리연대 상임대표는 뉴스웍스와의 인터뷰에서 "노사관계는 균형이 중요하다. 어그러진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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