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1.08.15 05:30

고임금 노조원 '근로자 대표' 어불성설…'도쿄 1013엔, 고치 792엔' 한국도 지역·업종별 차등 적용해야

서울시 소재 한 편의점. (사진=이한익 기자)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1. 서울시 중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올해 초 알바생 2명을 정리했다. 임금 부담 때문이었다. 대신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는 알바를 쓰지 않는 '무인편의점'을 도입하고 부인과 함께 하루 9시간씩 일하고 있다. 그간 알바생들과 합의해 야간근로수당과 주휴수당 없이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지급해왔지만 그마저도 부담이었다고 토로했다. 알바생을 정리해도 A씨 부부는 매출이 많이 나오는 달에는 각자 최저임금 수준의 수익을 가져갔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올해 들어 두어달 있었다고 한다. A씨는 본인의 편의점이 전국 편의점 가운데 '중간 이상'의 매출을 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인 점포도 알바생을 쓰기 어려운데 '중간 이하' 매출을 내는 편의점은 절대로 알바생 쓸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2. 충북 충주시 한 PC방에서 부업으로 주말 알바를 하고 있는 B씨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 PC방 사장이 9160원으로 확정된 2022년도 최저임금이 부담스러워 올해까지만 나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대신 PC방 사장이 직접 주말에 나오기로 했다. B씨는 본인이 할만한 주말 알바 자리도 부족해 PC방 사장과 올해(8720원)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것 같다고 한다. PC방 사장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주는 것이 범법행위라 신고당할까 부담스럽고 코로나19로 PC방을 찾는 손님이 줄며 매출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B씨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결국 내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성토했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하지만 사용자인 A씨와 근로자인 B씨는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어렵게 만들고 일자리마저 없애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받는다. 때문에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구성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앞서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웍스와의 인터뷰 <김태기 교수 "최저임금제 이미 '고장'…정부, 노·사 의견 받고 결정해야">에서 "최저임금은 노동시장 불평등을 없애고 빈곤층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며 "하지만 정부가 교육 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에만 매달리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역설'인 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저임금 9160원이면 실질 시급 1만1000원…알바생 3명중 2명도 급격한 인상 '부정적'

최저임금은 내년에도 오른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5.1% 오른 시간당 9160원으로 확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시급 9160원으로 오를 경우 주휴수당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시급은 1만1000원(주 15시간 이상 근로자)에 이른다. 경총은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 대다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과 내년까지도 완전히 회복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아 이번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에게 큰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경총은 인상률 5.1% 산출 근거가 현시점에서 적용하기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위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4.0%에 소비자 물가 상승률 1.8%를 더하고 취업자 증가율 0.7%를 빼 5.1%라는 상승 값을 도출했다. 과거에는 이와 같은 산정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경총은 이 방식대로 한다면 이번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15.6% 인상해야 맞지만 실제 41.6%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년간 누적 기준 경제성장률은 11.9%, 소비자 물가상승률 6.3%, 취업자증가율은 2.6%였다. 지난해에는 1.5%를 인상했는데 작년 경제성장률은 -0.9%, 소비자물가 상승률 0.5%, 취업자 증가율은 -0.8%인 점을 고려하면 0.4% 인상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5년(2017~2021)간 주요 경제 지표 및 최저임금인상률 비교. (자료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

경총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단체들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반발했다. 중기중앙회는 "이번에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현장의 충격은 불가피하다"며 "지불여력이 없는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현재 수준에서도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에서 과도한 인건비 부담으로 폐업에 이르고 이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감안하여 2022년도 최저임금은 최소한 동결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기대를 밝혀왔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이번 인상폭에 심각한 유감과 실망의 뜻을 밝힌다"고 전했다. 

주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알바생 3명 중 2명은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알바천국'이 전국 알바생 260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2%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히려 고용 상황이나 처우가 나빠질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근무시간이 짧아질 것'이란 응답이 27.8%로 가장 많았고 '동료들이 줄어들 것'(19.7%),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가 있을 것'(9.1%), '월급이 오히려 줄 것'(2.9%), '사장님과의 갈등이 있을 것'(2.0%), '체불이 잦아질 것'(1.7%) 등이 뒤를 이었다.

◆김태기 "최저임금 지급 대상 주로 30인 이하 사업체노조 조직률 0.2% 불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역별·업종별 차등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연방의회와 주의회가 법률로 최저임금을 정한다. 올해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로 2009년 이후 12년째 변화가 없다.

하지만 주별로 살펴보면 매사추세츠(13.50달러), 캘리포니아(13달러), 뉴욕(12.50달러) 등 30개 주와 수도 워싱턴D.C.(15.20달러)는 최저시급이 연방 기준보다 높다. 펜실베이니아, 텍사스, 위스콘신 등 15개 주는 연방 최저시급과 같다. 알래스카,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등 5개 주는 주에서 정한 최저임금이 따로 없다.

일본에선 매년 7월 노사정이 참여하는 후생노동성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합의를 거쳐 최저임금 목표치를 제시한다. 47개 도(都)·도(道)·부·현은 이를 기준으로 지역 상황에 맞춰 최저임금을 정한다. 올해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902엔(약 9352원)이다. 도쿄가 1013엔으로 가장 높고 오키나와 고치 등 7개 현이 792엔으로 가장 낮아 221엔까지 차이가 난다. 업종별 최저임금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지바현의 경우 지역 최저임금은 925엔이지만 전자부품·정보통신기계 업종은 954엔의 최저임금을 받는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경제 환경이 많이 다르다"며 "때문에 지역별 차이를 반영해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직접 지역별, 업종별로 차등을 두고 결정하는 방법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단일률을 결정해주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상황에 따라 차별 설정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동계는 우리나라에서 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화해 적용할 경우 노동자가 인건비가 높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지방은 '못사는 동네'로 낙인찍히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신 교수는 "경제 이론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며 "서울의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게 돼 서울로 가봤자 생활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오히려 지방의 인건비가 낮아져야 공장이 지방으로 많이 옮겨가고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이랑 영세기업이랑 어떻게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겠냐"며 "업종별, 기업규모별 최저임금 차등화를 도입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의 경우에도 농업과 IT 등 고임금 산업이랑 같을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최저임금과 거리가 먼 고임금 노동조합원이 '근로자'를 대변하는 것은 결코 이치에 맞기 않기 때문이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 위원 9명, 근로자 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이 부족하다"며 "근로자위원들은 최저임금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며 고임금 근로자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소속 근로자 위원 9명 가운데 4명은 한국노총, 2명은 민주노총, 나머지 3명은 각각 공공연대, 공공운수노조, 전국금속노조 소속이다.

김 교수는 "최저임금 지급은 주로 30인 이하 사업체에 해당될텐데 우리나라 30인 이하 사업체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2%"라며 "국내 노동조합은 거의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기업에 있다. 노동조합을 설립해 활동하기 어려운 근로자들이 진짜 어려운 근로자들이다. 여건상 근로자를 대표할 단체가 마땅치 않아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대변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을 고임금 근로자들이 결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권을 가진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는 구조도 개선이 시급하다. 

신 교수는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는 구조"라며 "정부 성향에 따라 최저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는 손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없애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하거나 최저임금위원회를 유지하되 공익위원을 노동부가 뽑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을 제외한 공익요원 9명이 최저임금을 정해버리는데 모두 친정부 인사"라며 "항상 친정부적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근로자 측이나 사용자 측에서는 반발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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