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7.01.24 17:21

[뉴스웍스=김벼리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누드화가 화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한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 ‘곧,바이(Buy)전’에 걸린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이 박 대통령의 알몸을 연상케 하는 모습을 담은 것.

이에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심지어는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SNS를 통해 “표 의원은 국민들 눈살 찌푸리게 하는 능력이 출중하다”며 해당 작품이 여성을 비하하는 성폭행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도 "작품은 예술가의 자유이고 존중돼야 하지만 그 작품이 국회에서 정치인의 주최로 전시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에서는 표 의원을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종합해보면 이번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 물음과 이어져있다. 예술과 외설의 관계는 어떠한가. 예술은 그 밖의 영역, 특히 정치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이름, 프랑스의 화가 에두아르드 마네와 귀스타브 쿠르베도 이와 맞닿아있다.

에두아르드 마네, '올랭피아'

◆예술? 외설?…‘금기에의 저항’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한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 ‘곧,바이(Buy)전’에 걸려 논란이 일고 있다.

‘더러운 잠’은 이구영 작가 본인이 밝혔듯 마네의 대표작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지난 1865년 살롱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신화 속 여신의 이상적인 신체의 관념적 묘사에 치중한 기존 누드화와 달리 이 작품에는 여성의 현실적인 육체가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 더구나 마네가 모델로 삼은 대상은 다름 아닌 ‘창녀’였다.

그런데 1년 뒤 쿠르베는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나체 여성의 음부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시선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더 나아가 쿠르베는 이 그림에 ‘세상의 기원’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말하자면 쿠르베는 당시 금기시됐던 여성의 음부를 전면화한 것에 데 이어 이에 성스러운 뉘앙스까지 더하는 ‘모독’을 저지른 셈이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작품들에 “외설적”이라며 혹평과 비난을 퍼붓는다. 지금 ‘더러운 잠’을 향한 비난의 맥락 일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올랭피아’와 ‘세상의 기원’은 단순한 외설적인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 파울 클레에 따르면 현대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보이는 것’이다. 해당 정의는 일차적으로 현대미술의 추상성을 개념화한 것이지만 여기에 윤리적 맥락을 더하면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윤리적 차원에서 예술의 정수는 무엇보다 ‘금기에 대한 저항’이다. ‘세월오월’의 작가 홍성백 화백의 ‘예술가들은 하지 말라는 것에 오기가 생겨 괜히 하는 버릇이 있다’는 말은 이를 잘 드러낸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클레의 ‘비가시성의 가시화’라는 개념은 ‘금기의 영역을 전면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금기를 깨부순다’는 윤리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세상의 기원’, ‘올랭피아’, 그리고 ‘더러운 잠’은 단순히 특정 여성의 나체를 탐욕적인 시선으로 형상화한 외설물이 아니다. 오히려 해당 작품들은 금기의 대상을 숨기지 않고 금기의 영역에서 끄집어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반(反)포르노그래피’다. 아이러니하지만 금기가 없으면 외설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정치·사회적 맥락까지 더하면 이 작품들은 '금기를 규정'하는 권위에 저항하는 적극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귀스타프 쿠르베, '잠'

◆예술과 정치…“리얼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이런 맥락에서 정치와 예술을 ‘칼 자르듯’ 나눈 문 전 대표의 비판은 힘을 잃는다. 해당 그림들은 예술이라는 경계를 넘어 그 자체로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뉘앙스도 갖기 때문이다.

쿠르베가 살았던 당시 프랑스의 제도권 미술 사조인 신고전주의, 낭만주의에서는 이상적인 시간, 공간을 지향했다. 영웅, 신 등의 아름다운 외형과 그들의 웅장한 세계를 형상화하는 식이다. 그러나 쿠르베는 이를 미술계의 위선으로 평가절하한다. 그는 과거, 이상이 아니라 현재, 이곳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른바 ‘리얼리즘’ 사조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런 쿠르베의 ‘반항아적’ 모습은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과도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19세 정치적 격동기의 프랑스에서 그는 평생 국가의 권위, 권력행사에 저항했다. 특히 ‘제2제정’으로 나폴레옹 3세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 뒤 그는 파리 박람회를 위한 작품 제작을 거부하고 레지옹도뇌르훈장 수상을 보이콧하는 등 정부와 마찰을 이어갔다. 그는 이 같은 신념을 발언, 편지, 선언서 등의 형태로 남기기도 했다.

결국 예술적 ‘리얼리스트’이자 정치적 ‘민주주의자’로서 쿠르베의 예술·정치적 스탠스는 ‘권위에의 저항’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오는 셈이다. 그는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얼리즘의 기초는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상을 거부하는 것은 개인을 해방하는 것이고 결국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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