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5.17 10:37
서구의 노인 주거정책은 그동안 살아왔던 집에서 계속 살도록 지원해주는 Aging in place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노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나라를 보면 된다. 일본이나 미국, 그리고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다.

그동안 연재한 시리즈에서도 지적했지만 고령화는 양날을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주제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생산성 감소와 함께 막대한 의료비를 잠식해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 하지만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국가 발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실버산업은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특히 노인을 위한 서비스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맞춤형이면서 다기능적이어야 하는데다 정서적인 공감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고용 없는 국가 성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선진국의 주택정책이 바뀌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주택산업은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대표적인 시장이다.

최근 미국의 언론은 “많은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령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주택을 어떻게 공급하고 지원해야 할지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주택연구센터(Joint Center for Housing Studies)는 2015년을 기준으로 가구원의 장애보유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55~64세 주택소유자 중 장애를 가진 가구원은 4분의 1 미만이었다. 반면 65~74세에선 3분의 1이상으로 조사됐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집을 개조하지 않으면 살던 집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주택산업의 변화를 예고한다. 주택연구센터는 “계단을 없애고, 넓은 출입문 등 유니버설 디자인 기능을 갖춘 주택은 아직도 3.5%에 불과하다”며 “고령자 가구 증가에 따른 주택공급의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통계가 미국 건축가협회(AIA)에서도 나왔다. AIA는 2016년 4분기 홈 디자인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 접근성·적응성 등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2년 연속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미국에선 2035년까지 3가구 중 1가구가 65세가 넘을 것으로 예측돼 주택시장의 변화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 원하는 거주 유형은 자신이 오랜 세월 살아왔던 집(Aging in place)이다. AARP(미국은퇴자협회)의 최근 연구결과에서도 50세 이상 인구의 89%가 자신의 주택에 계속 머물기를 선호했다. 낯선 시설에서 관리를 받기보다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공동체 활동을 원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의 노인주거정책은 종래 시설 입주형태에서 ‘Aging in place’로 선회하고 있다. 노인들이 자립해 살 수 있도록 지원해 가능하면 시설입주를 늦춘다는 전략이다.

노인은 시설 입소보다 평소 살던 집 선호

가장 큰 장점은 노인의 정서적인 마음의 안녕과 함께 정부 재정을 크게 줄여준다는 점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 역시 Aging in place 개념으로 정책을 바꿨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를 위해 실내를 개량하는데 54만 엔이 들었지만 이로 인해 280만 엔의 개호비용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배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다. (일본 건설성 건설정책 연구센터)

문제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가정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한국소비자원이 2012년 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65세 이상 노인의 위해사례 6,650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이 다치는 장소가 가정(4,089건, 61.5%)으로 나타났다.(보험연구원 오승연 연구위원 자료에서)

미국은 이를 위해 주정부와 비영리지원센터가 손잡고 적극적인 주택개량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내 시카고 주, 버지니아 주를 비롯한 25개 주에선 노인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의료진과 건축업자를 연결해 주택의 리모델링을 도와준다.

이를 위해 미국 하원은 지난해 5월 고령자 주택관리법(HR 5254)을 통과시켰다. 60세 이상된 주택소유자가 안전을 목적으로 자신의 집을 개조하면 주 정부가 3만 달러의 세금을 공제해 준다는 내용이다. 시공 대상은 입·출구 램프, 출입구 확장, 손잡이와 안전바 설치, 미끄럼 방지 바닥 시공 등이다.

NORC(은퇴자 주거공동체)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한다. 1980년대 위스콘신 매디슨대 마이클 헌트(도시계획) 교수가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공동체 가구원의 40~50%가 60세가 넘으면 지원해주는 제도다. 여기에는 정부, 시공업자, 자선단체, 기업 등이 참여할 수 있고, 공공 및 민간기금을 활용해 다양한 노후 프로그램(교육, 레크레이션, 교통 편의, 의료 등)을 보조해준다. 노인들은 자신의 집에 거주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함으로써 이웃과 함께 건강한 노후를 맞을 수 있다.

일본 역시 2011년 개호보험법을 개정해 의료지원과 더불어 사고예방을 위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도입했다. 지역 주민이 원하는 주택을 기본으로 의료·건강증진·안전 등을 공급하는 종합 선물 세트같은 복지서비스다.

우리는 법은 있지만 실효성은 글쎄?

그렇다면 우리 실정은 어떨까.

우리나라 노인주거 정책은 2012년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마련되면서 시동을 걸었다. 내용은 ▶임대주택 건설시 3% 범위에서 주거약자용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과 ▶주거약자의 주택개조 비용을 지원(장기저리)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2년 뒤 실태조사에서 주택개조 비용 지원은 전무했다. 게다가 주택개조 비용으로 편성된 26억 원 예산마저 주거약자용 주택 건설자금으로 전용해 정부의 정책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딱히 고령자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급여법’도 있다. 종래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던 기초생활보장 내용 중 주택급여 부분을 2015년 국토부로 이관하면서 저소득층의 지원대상과 지급액을 확대했다. 수혜계층은 중위소득 43%이하(1인 월 67만원, 2인 114만원)이며, 임차인에게는 월 주거급여액을, 자가소유자에겐 주택 개량을 지원한다. 수혜대상은 100만 가구로 추산되며, 가구당 월평균 지급액은 약 11만원. 장애인의 경우 최대 380만원까지 주거약자용 편의시설 시공비를 추가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지원내용이 누수, 난방, 급수 등 노후화된 주택 개량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다 대상 기준이 취약계층으로 한정돼 실질적인 고령화 주거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고령화 사회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하루빨리 물량 위주의 주택 공급정책을 벗어나 고령자의 장애수준, 심리적·경제적 편차 등 다양한 노인주거 수요를 반영하는 전략적 사고가 시급하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의 수석 연구원인 제니퍼 몰린스키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인들은 평소 살던 집을 떠나면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진다”며 “가정에 머물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는 요양보호서비스에 지출하는 돈이 노인이 살던 집을 지원하는 비용의 3배에 이르며, 이 격차는 점차 커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고령자 주거정책을 하루빨리 전환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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