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6.30 11:20
노인의 말벗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로봇 파로. 우울증과 운동부족으로 기능이 계속 떨어지는 노인에게 치료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출처: www.parorobots.com]

일본 정부는 올해 초 노인을 돌보는 간병로봇에 개호보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개호보험은 우리나라의 노인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공적보험이다. 그동안 개인이나 시설에서 지불하던 간병로봇의 사용료를 정부가 지원해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노인에 대한 복지혜택을 떠나 로봇산업의 발전에 엄청난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서는 붙었다. 개호현장에 투입한 로봇의 효과를 검증해 보겠다는 것. 후생노동성이 로봇 사용 후 인력 절감 효과와 노인 및 가족의 만족도를 조사해 내년부터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간병로봇을 장려하기는 했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일부 비용을 보조해주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로봇을 도입하는 개호시설 등엔 20만 엔 이상 제품에 한해 보조(상한 300만 엔)하고, 개인용은 10만 엔을 상한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노인을 돌보는 일손부족이 한몫을 했다. 이미 간호사 수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정부는 자격시험의 난이도를 하향조정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6월, 간병 실태를 조사한 후생노동성의 '국민생활 기초조사' 결과에 따르면, '老老간병‘(간병인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모두 75세 이상)의 비율이 30.2%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가족 등 친인척에 의한 간병형태도 54.7%에 달했다.

일본은 세계적인 로봇 강국이다. 산업용 로봇은 생산과 소비 모두 세계 1위다. 2014년에 ‘로봇에 의한 새로운 산업혁명’을 실현한다는 목표 아래 ‘로봇신전략’을 발표했다. 세계 로봇혁신의 거점화, 세계 제1의 로봇 활용, 로봇의 인접기술(빅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융합이라는 3대 발전 전략을 추진키로 했다.

일본의 간병로봇 시장은 이 같은 정부의 지원 아래 급성장하고 있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간병로봇 시장규모는 2015년 출하기준으로 10억7600만 엔. 이는 전년대비 549% 늘어난 수치다. 2013년 국가프로젝트인 ‘로봇개호기기개발·도입 촉진사업’ 추진 3년 만에 이룬 업적이다. 일본의 간병로봇 시장은 앞으로 보험적용이라는 호재를 안고 2020년 150억 엔, 2030년 350억 엔대로 급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간병로봇이 노인의 자립과 활동량을 늘리는 등 삶의 질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로봇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연구는 지난해 8월부터 올 3월까지 일본의학연구개발기구가 실시했다. 실험을 위해 휴먼로봇인 페퍼와 동물로봇인 팔로 같은 17종류의 로봇이 98개 간호시설에 파견했다. 대상자는 65세 이상의 간호가 필요한 노인 866명.

연구팀은 조사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표준화된 60가지 질문 항목을 이용해 전후의 기능을 평가했다. 예컨대 화장실에 걸어 갈 수 있는지, 이를 닦을 수 있는지 등이다.

로봇은 세 가지 분야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자신의 건강관리는 잘 하는지, 운동 기능은 좋아졌는지, 집단생활에 어느정도 참여하는지와 같은 활동성, 이동성, 사회성 등이다. 참가자의 34%가 이 같은 질문에 기능과 활력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병상에 누워만 있던 노인이 걷기 시작하는가 하면 이중 39%는 식사와 화장실을 혼자 가는 등의 기본적인 활동이 눈에 띠게 좋아졌다. 특히 고양이 로봇을 안고 다니며 대화가 늘어나는 등 정서적인 개선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하루 종일 방에 머무르는 88세 할머니의 경우, 로봇은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차를 마시라고 제안했다. 그녀는 보행기를 사용해 거실로 들어가 차를 준비했다.

실제 로봇 파로의 인기는 대단하다. 귀여운 바다표범의 모습을 한 파로는 우울증이나 고립감에 시달리는 노인의 말동무가 된다. 촉각에 반응하고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기도 한다. 운동을 권하고, 쓰다듬으면 살며시 눈을 감기도 한다. 안아달라며 애교도 부리며 주인과 교감을 한다. 미국 텍사스대학 산드라 피터슨 박사팀이 실시한 치매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에서 파로는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 등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 치료의 필요성도 3분의 1로 줄었다.

2015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소프트뱅크의 페퍼는 간호분야까지 활용 영역을 넓혀 주목을 받고 있다. ‘페퍼 월드 2016’ 전시회에서 노인을 위한 간호보조업무까지 맡겠다고 밝힌 것이다. 요양기관에 입원한 노인 환자의 체성분과 검진결과를 분석해 월·연간 누적 결과를 도출하고, 환자의 현재 건강상태를 직접 설명해주는 카운슬러 로봇의 기능도 추가한다는 것이다.

페퍼는 노인의 두뇌 트레이닝도 지원한다. 화면에 문제를 내면 노인이 화면을 터치해 정답을 맞히는 방식이다. 페퍼는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감정을 파악해 외로운 노인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일본 이화학연구원은 리프팅 어시스트(환자를 침대에서 들어올리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름은 로베어다. 또 엔윅(NWic)사가 개발한 배설처리 로봇 ‘마인렛 샤와야가’는 이미 일선 요양병원에 배치돼 간호사를 돕고 있다.

혼다가 2족 보행로봇 아시모의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보행지원 로봇’도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개호시설에 100대가 팔린데 이어 올해도 판매가 순항 중이다.

일본의 간병로봇은 이미 상품화됐거나 개발 마무리 단계다. 용도별로는 실내외 이동지원 로봇, 재택간호형 돌봄 로봇, 배설지원로봇, 목욕지원로봇 등 다양하다. 이중 재택간호형과 배설지원로봇은 상품화 됐고, 목욕지원로봇과 실내이동지원 로봇은 올해 또는 내년 중으로 개발을 완료해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세계의 로봇시장은 노동력 대체와 고령화라는 두 바퀴를 축으로 삼아 수요가 급팽창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IFR(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 국제로봇협회)에 따르면 제조업용 로봇시장은 연평균 15%(2015~2018년), 서비스용은 22%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간병로봇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면서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국가정책의 모범적인 모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