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8.02 16:19
산업디자이너 이브 베하가 지난해 말 발표한 슈퍼플렉스. 특수 소재로 만들어 가볍고, 유연하며, 세탁도 할 수 있다. 근력이 떨어진 노인의 삶을 도와줄 획기적인 제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화로 인해 근육이 소실되는 것을 ‘사르코페니아(Sarcopenia) ’라고 한다. 뼈의 밀도가 낮아져 골다공증이 발생하듯 근육도 점차 줄어들어 근육 결핍증으로 이어진다. 의학적으로 40세부터 매년 1%씩 감소하다가 환갑 쯤 되면 더욱 빨라지기 시작해 75세 가량이면 청년시절의 절반에 불과하다.

근육의 양은 운동 능력의 지표다. 특히 노인의 경우 근육은 활기찬 삶과 독립적인 생활을 가능케 한다. ‘Aging in place', 다시 말해 남의 수발을 받지 않고 자신이 살던 집에서 노후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근육이다.

다행히 근육은 운동과 음식으로 어느 정도는 예방 또는 지연시킬 수 있다. 근력운동과 단백질 섭취가 요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이 떨어진 근력을 보완해 줄 수는 없을까.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고안된 것이 외골격 로봇이다. 이미 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개발돼 현재 전장이나 산업현장에서 사용여부를 테스트 중이다. 

이에 반해 노인에게 외골격 로봇을 적용하기에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기력이 부족한 고령자에겐 무게와 유연성, 작동 방식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스타트업은 수퍼플렉스(Superflex)라고 하는 입는(웨어러블)로봇을 선보여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작품이 딱딱한 기계가 아니라 직물처럼 유연하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로봇보다는 의류에 가깝다. 로봇공학자와 함께 개발에 참여한 사람도 섬유나 패션전문가들이다.

수퍼플렉스의 공동 창업자겸 CEO인 리치 마호니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수퍼플렉스는 로봇공학 전문기업이지만 앞으로 의류 혁신기업으로 더 많이 알려질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근력증강 웨어러블은 전기가 흐를 때 사람의 근육처럼 수축되는 스마트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

수영복을 연상하는 이 로봇은 생체 근육의 원리를 모방했다. 두뇌 역할을 하는 센서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배터리, 동력 전달장치, 그리고 근육처럼 수축하는 독특한 섬유로 구성된다.

옷에는 동작과 속도, 평형유지를 감지하는 수많은 센서가 부착돼 있다. 이 센서들은 착용자의 움직임을 파악해 육각형의 포드로 정보를 보낸다. 포드는 등과 허벅지에 여러 개가 가지런히 배열돼 있는 ‘일렉트릭 머슬(전기 근육)’이다. 이 안에는 미니 충전식 배터리와 제어장치, 회로판 등이 있어 센서에서 보낸 데이터를 분석, 특수 섬유를 수축시켜 약한 근력을 보완해준다. 소재는 착용감이 좋을 뿐 아니라 세탁도 가능하다.

수퍼플렉스는 현재 일본 벤처캐피털인 글로벌 브레인(Global Brain)이 주도하는 기금 모금에서 약 1000만 달러를 조달했다. 회사가 겨냥한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은 현재 65세 이상 노인이 4800만 명으로 향후 30년 내 88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경우엔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제품 출시일은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다. 회사 측은 충전식 배터리의 지속시간, 장착 위치, 고령자의 친숙성 등 해결할 문제가 남아있다고 말한다.

수퍼플렉스가 출시되면 노약자 뿐 아니라 장애자나 체력이 많이 필요한 산업현장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하버드대학 Wyss Institute도 유연성이 돋보인 보행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뇌졸중 환자의 걸음걸이를 도와주는 웨어러블 로봇이다.

소프트 엑소슈트(Soft Exosuit)로 불리는 이 웨어러블 로봇은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걸을 수 있는 환자가 고객이다. 뇌졸중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걸을 때 한쪽 발이 바깥쪽으로 돌아가거나 고관절이 굳어 발을 질질 끌기도 한다. 엑소슈트는 벨트에 내장된 구동장치의 동력이 발에 전달돼 발목을 잡아주고 추진력을 발생한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생체학자, 물리치료사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최근 9명의 뇌졸중 환자에게 엑소슈트를 착용케 한 뒤 야외와 트레이드밀에서 걷게 하는 임상연구를 진행했다. 결과는 보행 효율성이 10%, 좌우대칭 보행은 20% 이상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앞으로 무릎과 엉덩관절 부위를 도와주는 엑소슈트도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도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뛰어들고 있지만 고령자가 타깃은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 조규진 교수팀이 선보인 장갑형 웨어러블 로봇은 소재가 폴리머 재질이다. '엑소 글러브 폴리' 라는 이름의 이 시제품은 착용도 편하고 물에 넣어도 무방하다. 대상은 손 마비 또는 근육이 손상된 환자들이다.

현대자동차도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열심이다. 주로 보행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보행 지원, 또는 의료용 로봇이다.

하지만 완벽한 외장형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선 앞으로 거쳐야 할 난관이 많다. 무게를 줄이는 첨단 소재 개발은 물론 착용자의 동작을 파악하는 센서, 이를 해석해서 동력을 전달하고, 제어하는 기술 등이 뒤따라야 한다.

웨어러블 로봇은 로봇강국인 미국과 일본을 필두로 중국, 한국, 유럽이 뛰어들고 있다. 시장규모도 2015년 3650달러에서 2021년엔 21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굵직한 로봇개발 회사도 Ekso, Lockheed Martin, Sarcos, Raytheon, BAE Systems, Panasonic, Honda, Daewoo, Noonee, Revision Military, Cyberdyne 등 10여 곳에 이른다.

가정 뿐 아니라 이젠 생산현장, 전쟁터, 화재 또는 재난 현장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활약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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