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2.19 11:56

전문가들 "밑빠진 독 물붓기 말고 철수이후 시나리오 생각할때"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된 말리부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한국지엠>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정부와 GM(제네럴모터스)가 한국지엠의 실사시기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한국지엠의 경영실태를 투명하게 실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GM은 ‘영업비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GM은 “이달 말까지 자금지원을 결정하라”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산업은행은 최근 철수설에 휘말린 한국지엠에 대한 실사 시기와 방법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와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고금리 대출과 납품가격, 과도한 연구개발(R&D) 비용 등에 대한 세부 자료를 GM 측에 요청했다.

최근 GM은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한국시장 철수를 본격화했다. 유상증자 등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겠다는 정부에 대한 강한 압박인 셈이다. 정부는 사전 협의 없이 군산공장을 폐쇄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한편 한국지엠의 부실 원인을 조목조목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지엠은 지난 2014년부터 최근 4년 간 무려 2조6000억원 가량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며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업계는 이 같은 한국지엠의 부실 원인으로 모기업과의 비정상적인 거래 관계과 경영 구조를 첫 손에 꼽고 있다.

한국지엠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GM 관계사를 통해 자금을 대출받고 연 5%의 이자율이 적용된 4620억원의 이자를 지불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차입금 평균 이자율의 2배가 넘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또 한국지엠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R&D 비용으로 무려 1조8580억원이나 과도하게 지출했다. 이 기간 기록한 누적적자보다 많은 금액이다. 뿐만 아니라 원가율이 90%를 넘는 한국지엠의 반조립 차량(CKD)의 수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GM이 한국지엠의 피를 빨아먹으며 본사의 배만 불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 같은 의혹들을 철저히 검증한 다음 한국지엠에 대한 자금 지원을 논의한다는 방침이지만 GM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정부의 경영실사에 비협조적인 상황이다.

앞서 배리 앵글 GM 총괄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13일 군산공장 폐쇄를 밝히며 “한국지엠과 주요 이해관계자는 사업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2월 말까지 한국지엠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GM 경영진의 이 같은 발언은 2월 말까지 우리 정부의 자금 지원이 없다면 ‘중대한 결정’인 ‘한국 철수’를 결정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댄 암만 GM 사장 역시 “한국 정부, 그리고 노조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몇 주 안에 한국 내 다른 공장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시간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긴박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GM은 우리정부에 대한 자금지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중대결정’을 통해 부평‧창원공장 폐쇄는 물론 한국 철수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GM이 한국지엠의 거래내역 공개와 자구책 발표 전에 자금지원이 선행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GM은 한국지엠을 비롯해 글로벌 자회사들에 ‘빨대’를 꼽아 이득을 취한 후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리는 구조조정의 달인”이라며 “적자의 원인은 회사 측에 있는 만큼 거래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구체적인 자구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GM은 호주와 유럽, 인도, 남아공 등에서 잇따라 철수하며 글로벌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GM은 호주 사례와 같은 방법으로 한국지엠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는 우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한국지엠의 철수가 국내 자동차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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