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기자
  • 입력 2018.09.02 17:58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뉴스웍스=박경보기자]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자수성가형 주식부호 1위를 차지했다. 또 전체 순위에서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2일 재벌닷컴 발표에 따르면 지난 8월 31일 종가 기준 국내 상장 주식 부자 상위 100명 중 자수성가형 부호는 31명이고, 이 가운데 서정진 회장이 상장 주식 평가액 4조5520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서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상위 100명 중에서도 4위를 차지해 5위 최태원 SK그룹 회장(4조3332억원)과 6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4조877억원)보다 많았다.

서 회장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조사 결과와 같이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자산가라는데 있다.

1957년 10월 23일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할 정도로 가난했다. 2남 2녀 가운데 장남이었던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연탄 배달과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남들 보다 1~2년 늦게 고등학교(제물포고)를 졸업했다. 이후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서 회장은 1985년 당시 제일기획 기획이사였던 손병두 전 전경련 부회장이 한국생산성본부 상무이사로 자리를 옮길 때 스카웃되며 함께 자리를 옮긴다. 이후 생산성본부에서 대우그룹 컨설팅을 하다 김우중 회장의 눈에 들어 대우자동차로 옮겨 기획재무 고문으로 일했다. 직장생활은 순탄했다. 핵심을 읽어내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데다 활동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젊은 나이에 임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시련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당시 대우그룹 해체로 직장을 잃은 그는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우차 출신 동료 10여 명과 함께 1999년 ‘넥솔’을 창업했다. 넥솔은 셀트리온의 전신이다.

사업 시작이후에도 어려운 상황은 지속됐다.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되자 주가를 끌어내리려는 공매도 세력과 싸움으로 죽을 고생을 했다

그는 “매출 한푼 없이 3년 동안 투자할 때 힘들었다. 그때 자살할 결심도 많이 했다”고 했다. 자살시도도 몇 번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일에 목숨을 걸고 죽도록 일했다. 그는 “사업은 자기 일생을 투자하는 거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목숨을 걸어 놓고 하는 거다. 그 정도의 배수의 진을 안치고 국제 경쟁력을 갖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고 말한다.

그는 일중독자처럼 일하고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자로 정평이 나 있다. 가장 즐거운 취미생활이 해외출장을 꼽을 정도로 '일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일이 안 풀리면 현장으로 나가 몸으로 부딪치며 실마리를 찾는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지금의 셀트리온이 있었던 것도 바로 서 회장의 이같은 집념과 뚝심이 밑받침이 됐다. 20년 남짓한 시간에 셀트리온을 글로벌 바이오 제약기업으로 키운 그의 발걸음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가속이 붙고 있다. 그는 지금도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점유율 끌어올리기에 힘쓰면서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의료기기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서 회장과 셀트리온의 약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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