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2.01 07:20

적은 세금·높은 연비 장점 많지만 동력성능·내구성 의심은 여전
'숫자의 벽' 넘고 신뢰 얻기위해 고객시승행사와 보증기간 늘려야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쉐보레 말리부가 파격적인 혁신을 감행했다.

상당히 큰 몸집을 가진 중형세단이지만 심장은 소형차급에 들어가는 1.35ℓ 가솔린 터보엔진을 최근  넣었기 때문이다.

중형세단은 2.0ℓ 엔진이라는 공식이 일반화돼 있는 상황에서 배기량을 크게 줄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지난 2013년 르노삼성 SM5를 시작으로 SM6, 쏘나타, K5에 1.6ℓ 터보엔진이 잇따라 적용되긴 했지만 중형세단에 1.35ℓ까지 다운사이징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엔진을 다운사이징하는 것은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들은 2021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행보다 60-70%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 배기량이 높을수록 배출가스가 많아지기 때문에 엔진을 다운사이징 하는 것이 환경 규제에 대한 최적의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엔진을 다운사이징하면서 얻는 이점은 또 있다. 엔진 배기량을 줄이면서 필연적으로 달게 되는 과급기(터보차저)는 엔진의 효율을 크게 향상시키기 때문에 출력 향상은 물론 연비도 좋아진다. 특히 말리부처럼 실린더 수가 줄어드는 경우 마찰로 낭비되는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  

실제로 말리부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들어간 1.35ℓ 터보엔진은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4.1kg.m의 뛰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최고출력 163마력에 최대토크 20.0kg.m의 힘을 내는 쏘나타 2.0 모델과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토크 값은 앞선다. 터보차저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낮은 배기량에도 높은 수준의 동력성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리부 1.35 모델은 복합연비 14.2km/ℓ라는 동급 최고의 연비까지 실현했다. 덕분에 가솔린 중형모델로는 최초로 복합 연비 2등급도 달성했다. 통상 2.0 가솔린 중형세단들이 12.0km/ℓ 내외의 연비인 점을 고려하면 경제성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특히 배기량이 줄어들면 자동차세 부담도 크게 덜 수 있다. 2000㏄의 중형세단을 구입하면 2년차까지 매년 52만원에 달하는 자동차세를 내야하지만 말리부 1.35 모델은 절반도 안 되는 25만원 수준만 부담하면 된다. 우리나라 자동차세 체계는 배기량 1600㏄를 넘어가면 큰 폭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엔진의 다운사이징은 이처럼 장점이 많지만 말리부 1.35 모델이 국내 시장에서 잘 팔리려면 일단 ‘숫자의 벽’을 넘어야 한다. 유독 ‘스펙’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은 아직 “중형세단엔 2.0엔진이 들어가야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쏘나타와 K5는 여전히 1.6터보가 아닌 2.0 모델이 더 많이 팔리고 있고 SM6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무리 터보엔진이라도 배기량이 낮으면 힘이 부족할 것이란 막연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말리부 1.35 터보를 직접 시승해보면 경쟁 차종의 2.0 모델보다 성능이 뒤처지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쉐보레 더 뉴 말리부(사진제공=한국지엠)
쉐보레 더 뉴 말리부(사진제공=한국지엠)

그렇다면 이러한 소비자 인식을 깨기 위해 고객 접점을 지금보다 훨씬 늘릴 필요가 있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 고객 대상 시승행사 등을 자주 연다면 판매 확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터보차저 기술을 통해 충분한 동력성능을 확보하면서도 경제성까지 잡았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다운사이징 터보엔진의 내구성에 우려를 갖는 고객들을 위해 보증기간과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도 판매를 위한 좋은 방법이다. 물론 한국지엠은 말리부 엔진의 내구성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황준하 한국지엠 차량구동시스템 총괄 전무는 더 뉴 말리부 출시행사에서 “말리부에 들어간 1.35 엔진에 대해 16가지 정도의 내구성 검사를 진행했다”며 “신형 말리부는 기존 제품보다도 한층 강화된 내구성을 확보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말만 들어서는 쉽게 와 닿지 않는 법이다. 다운사이징된 엔진은 배기량이 작아서 부하를  많이 받을 수 있고 특히 터보엔진은 일반적으로 관리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터보엔진은 고온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원활한 냉각이 필수다. 이 때문에 고속주행 후 열을 식히는 후열과정이 없으면 엔진에 큰 충격(데미지)을 줄 수도 있다는 게 정비업계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한국지엠은 말리부에 대한 품질보증 확대를 고려해봤으면 한다. 이 같은 조치는 소비자 신뢰와 판매를 동시에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주력 모델인 말리부가 잘 팔린다면 경영정상화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 회사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데 어떻게 쉐보레 제품을 구입하냐는 불만을 해소할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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