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2.02.12 06:00

18~19일 혜화동에서 희극 '굿닥터' 출연…"성취감 주는 짜릿함에 리얼여행가 이어 배우까지 도전"

대학로 연극배우 윤석구 프로필. (사진제공=윤석구)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소극장이 즐비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윤석구(67) 씨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열심히 대본을 살펴보며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투블럭 머리스타일에 빨간색 뿔테 안경을 끼고 2030 젊은 친구들이 즐겨입는 디스트로이드 진을 입은 윤 씨의 첫 인상은 힙한 '액티브 시니어'의 정석을 보는 듯 강렬했다.        

오는 18~19일 대학로 무대에 용기 있게 등단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있다고 해서 취재에 나섰다. 

액티브 시니어란 미국 시카고대학 심리학과 버니스 뉴가트 교수가 만든 단어로 은퇴 이후에도 소비·여가생활을 즐기며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활동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세대를 지칭한다. 기존 시니어의 세대 특징이 수동적이고 보수적이라면 액티브 시니어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다양성을 띤다. 

1955년생인 윤석구씨는 40여 년 가까이 광고를 한 광고 1.5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980~1990년대 재벌에 속하지 않은 순수 독립광고대행사로 이름을 날리던 (주)거손에서 '봉고코치' 생산으로 사세를 크게 확장하던 기아자동차 광고 제작을 10여 년 맡아 주가를 올렸다. 이후 1993년에 광고회사 (주)시스컴으로 옮겨 기아자동차, 대우통신, 한화종합화학, 현대건설 등 20여 개 넘는 회사의 광고와 포스터, 카탈로그, 팸플릿 등의 수많은 제작물을 기획제작한 베테랑 광고인이었다. 

그는 "늘 도전에 목 마른 골수 광고쟁이였다. 광고회사에 있으면서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직원들과 머릴 맞대면서 시안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귀중한 콘텐츠도 광고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제작해야하는 일도 빈번했다. 늘 창작에 따른 고통 때문에 정신과 육체 모두 힘든 직업임에 분명했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큰 분야이기에 일을 놓을 수 없었다. 성취감이 주는 짜릿함에 무슨 일이든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됐고 배우라는 일까지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며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다.   

연극 굿닥터 포스터. (포스터제공=윤석구)

윤씨는 20년 넘게 운영하던 회사를 자신과 함께했던 직원들에게 통째로 넘기고 은퇴했다. 

그는 "2001년 대표이사로 취임해 광고 물량이 많은 부동산 분양 광고에 눈을 돌렸다. 거의 모든 분양 광고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수주하는데, 성공률이 70%가 넘었다. 4~5년 분양 광고에 매달리다 보니 회사 규모도 커지고 직원도 많이 늘어 30명 가까이 정도 됐지만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서 회사에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직원도 줄이고 사무실도 작은 곳으로 이전했다. 사는 집도 팔고, 갖고 있던 조그만 부동산도 팔아서 손실금을 일부 메웠다. 내 봉급도 삭감하고 회사를 꾸려나갔다. 여러 자구책을 꾸리면서 남아있는 은행 대출금은 10여 년 넘게 다 갚았다. 그 후 회사를 직원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넘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랫동안 같이 고생해온 직원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다. 자기가 봐도 뭔 배짱인지 그야말로 준비된 것 없는 빈털털이로 나왔다. 

늘 치열한 업계에서 살다보니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는 윤 씨는 준비되지 않은 은퇴를 맞이한 후 처음으로 공허함을 느꼈다. 하지만 '여행'에 눈을 뜨게 되면서 그의 삶은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여행은 행복이고 힐링이다. 그는 여행에 대해 어떤 환상 같은 것을 가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충남 천안 목천읍에서 빈농의  8남매의 다섯 번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며 일찍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이 하는 광고회사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허전함이 남아있었다. 

그런 그가 2008년부터 지인들과 둘레길 걷기 등을 시작하면서 여행클럽들이 운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알게됐다. 소수의 멤버들만으로 계절별로 딱 맞는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에 주목, 수료했던 여러 대학원 CEO과정 동문회에 산악회 등을 제안하고 조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윤 씨는 "자연히 전국의 유명 걷기 길이나 명산, 신비의 섬 여행지를 잘 알게 돼서,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여행 전문가로 불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페이스북과 블로그, 카페, 밴드 등을 활발하게 운영하면서 여행을 즐기며 살고 있다. 

 

윤석구 (앞줄 가운데)씨와 단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전현건 기자) 

그는 3년 전 음악콘서트에서 우연히 '광화문연가 Hugging문화예술'이란 단체를 설립한 조정혜 대표를 만났다. 이 단체는 많은 문화예술인이 꾸준하게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곳이다.

산하에 합창단과 연극동아리가 있는데 이번에 첫 번째로 연극이 올려진다는 말을 조 대표한테 듣고 연극 참여 제안을 받자마자 조금도 주저함 없이 바로 수락했다. 

그에게 무대는 그간 살지 못했던 제2의 삶을 경험하는 자아실현의 공간이다.

윤 씨는 "연극에 소질이 있는지 어떤지는 몰랐지만 남의 인생, 또 새로운 삶을 살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흥분이 됐다"며 "예전에 광고회사에서 수없이 많은 프레젠테이션을 한 경험으로 대중들 앞에 서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도전하는 연극은 '굿닥터'라는 희극이다. 이 연극은 골든글로브 각본상, 3번의 토니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한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닐 사미먼의 작품이다. 사이먼은 생전에 30여 편의 희극을 흥행시켰다. 세계적으로 9000회가 넘게 공연됐다. 

윤 씨는 "이번에 출연하는 단막극은 '재채기'와 '겁탈'이다. 이 두 연극은 6개의 작품 중 비중도 크고 대사도 많아서 첫 연극 출연에 엄청난 도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부담감도 어느정도 있고 대사가 잘 안외워질 때가 있지만 잘 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극 무대 등판은 자아실현 이상의 의미도 있다. 은퇴 전후의 액티브 시니어는 직장에선 물러나도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건 원치 않는다. 이들에게 무대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협업은 곧 제3의 관계를 형성하는 터전이 될 수 있다.

그는 "연습도 많이 해야 해서 시간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며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연극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됐다. 함께 공연하는 전문 배우인 유정기 배우의 '연극은 마약 같다. 한번 빠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게 연극'이라고 말한 것에 공감을 하고 있다"며 "같이 연기하는 사람들과 교우를 맺으며 또다른 관계형성을 맺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 같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번 연극 도전이 단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연극 무대에 서는 것 역시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 씨는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액티브 시니어들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정작 맞춤형 활동시설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더욱이 아직도 수동적으로 살고 어떻게 제 2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액티브 시니어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직접 무대에 올라 문화 콘텐츠를 적극 생산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며 시니어들의 능동적인 삶의 나침반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광고인에서 리얼여행가로, 이제 연극인으로도 살아가겠다는 윤 씨는 "코로나19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면서 "제 도전으로 인해 많은 시니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희극 굿닥터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윤석구)

희극 굿닥터는 오는 18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을 시작으로 19일 토요일 6시까지 이어진다. 장소는 서울시 성북구 혜화동 대학로민송아트홀2관이다.

이번에 펼친 공연인 '굿닥터'는 미국 작가 닐 사이먼의 1973년도 작품이다. 초연 이후 현재까지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홉의 칼럼을 원안으로 탄생했으며, 희극작품이면서도 냉정한 시선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은 2막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재채기', '오디션', '의지할 곳 없는 신세 : 가면극', '겁탈', '늦은 행복', '생일선물' 등 6개만 공연한다.

이번 공연의 기획은 '광화문연가 Hugging문화예술' 조정혜 대표, 연출은 연극학 박사 1호인 연극인 김종구 동양대학교 공영영상학부 초빙 교수가 한다. 출연은 윤석구, 이상신, 오세균, 조정혜, 백헌애, 홍용운, 서현석, 최준명, 이준, 전상건, 특별출연에 유정기 배우가 나선다. 이외에도 조명 문연지, 음향 류소설, 분장 장소영, 진행에 이종호, 노신희, 김시화가 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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