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6.21 05:00

군, 정직하고 솔직한 브리핑 하지 않는 건 국민 배신과 같아

엄효식 GOTDA 대표. (사진제공=엄효식 대표)
엄효식 GOTDA 대표. (사진제공=엄효식 대표)

1950년 6월 26일 아침, 국내 언론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1면에 보도했다.

"괴리군 돌연 남침을 기도", “38선 전역에 비상사태, 정예국군 적을 요격 중”, “적의 신경전에 동요말라”는 제목이 달렸다. 요약하자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으나 우리 국군이 잘 싸워서 방어를 잘하고 있으며 심지어 물리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인 6월 27일 아침 기사는 한발짝 더 나간 내용이었다.

“아군 용전에 북괴군 전선서 패주 중-우리 군이 해주시를 완전 점령”

6.25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초기 전투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춘천지역에 주둔했던 아군 6사단이 북한군의 공격을 결사적으로 저지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당시 대한민국 국군 특히 육군은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북한의 포위전으로 대참패를 당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운명 역시 암울했을 것이다.

6월 28일, 우리 육군이 한강대교를 폭파했다. 서울북부로 진입한 북한군 탱크부대가 한강다리를 건너 남하하게되면 아군이 미처 반격태세를 갖출 수도 없는 긴급상황이 되기 때문에 당시 군 지휘부는 서울시민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다리 폭파를 실행했다. 피난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있던 서울시민들이 갑자기 낭패에 빠진 것은 물론이고, 전방지역에서 후방으로 철수하면서 전열을 정비하려던 국군에게도 심각한 위험상황이 된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와 관련하여 기사를 실은 매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방부가 그렇게 발표를 했고, 언론사들은 팩트를 확인할 수 있는 군사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발표를 믿고 그대로 기사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방부는 왜 저런 내용을 브리핑했을까. 정확하게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전쟁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실제 잘못된 전황정보를 갖고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국군의 강한 전투력을 스스로 확신했기 때문에, 우리 국군이 조만간 북한군을 격퇴할 것으로 믿어서 저렇게 발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8선지역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급속하게 후방증원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팩트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잘못된 정보를 믿고 브리핑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도적인 거짓브리핑이거나 무능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전쟁이 일어난 초기 2~3일 동안 저런 기사를 본 국민과 군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민들은 ‘전쟁’이란 상황에 대해 마음 한편으로 불안해하면서도 피난을 가야하나 고민하다가 기사 내용을 보고 안도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38선지역에서 북한군의 불법남침을 잘 막아내고 있다는 뉴스만큼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조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국군 장병들은 전우들이 잘 싸우고있어서 곧 전쟁은 종결되고 예전의 평화로 되돌아가겠다는 안도의 느낌을 갖게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국군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북한군 전차가 서울 북방으로 진입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갑자기 서울 한강의 다리는 예고없이 폭파되어 끊겼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초기전투상황에 있어서 언론의 잘못된 보도, 즉 1950년 당시 국방부의 왜곡된 브리핑은 우리 군의 대응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심지어 자해에 가까운 실책이었다.

6.25 전쟁기간 동안 우리 국군은 엄청난 인명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전사장병만 17만 6천여명에 이르렀는데, 그중 한국군은 13만 8천여명, UN군은 3만 8천여명으로 알려져있다. 심지어 민간인 희생도 24만4633명에 달했다. 지금은 20대 청춘들이 군대를 갈 때 가장 선호하는 카투사조차도 7천여명이 전사했다.

이러한 희생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동원될 수있지만, 초기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즉 거짓 전황브리핑의 책임도 자유로울수 없다.

무기를 갖고 싸워야 하는 군인들의 전사도 안타깝지만 무기도 없는 민간인들이 저리도 많은 인명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은 다시금 새겨둘 필요가 있다. 군인들은 평시 부단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유사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지상최고의 명제이다. 그리고 군을 믿고 의지하는 비무장 민간인의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또한 양보할 수 없는 군의 본분이다. 이 두 가지를 감당할 자신이나 용기가 없다면 군복을 입고 있을 자격이 없다.
 
군이 국민과 언론을 향해서 정직하고 솔직한 브리핑을 하지 않는 것은 전쟁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나아가 국민들을 배신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교훈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북한의 국지도발이나 안타까운 사건사고가 발생시 최초 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판단이나 언론브리핑은 우리 군의 자부심과 소명심을 황무지로 내쫓아 버린다.

커뮤니케이션의 최전선에 있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공보정훈장교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언론상황이 있다. 은폐, 축소, 말바꾸기라는 기사의 진화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국방장관을 비롯한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국민앞에서 머리와 허리를 굽히는 장면이다. 물론 군복 입은 군인들 스스로의 추락하는 자존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사기와 전투력으로 직결이 된다.

6.25전쟁 초기 3일간과 같은 브리핑과 언론보도는 사라져야 한다. 전쟁상황을 비롯한 언론브리핑 즉 커뮤니케이션은 한시도 중단되어서는 안되고, 언제나 진정성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세금납부로 마련된 국방 예산을 통해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최신 첨단무기체계로 군대를 무장시켜준 국민들에 대한 의무 이행이다.

군대의 고객인 국민들, 내부고객인 군장병들과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강한 군대’의 시작점이다. 그래야만 북한군도 우리 군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더욱 괴로워 할 것이다. //엄효식 GOTD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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