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2.08.08 11:45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텅 비어 있는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식당. (사진=뉴스웍스 DB)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텅 비어 있는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식당.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서울 중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A식당은 최근 기본으로 나가는 상추와 깻잎 등 쌈채소의 양을 대폭 줄었다. 또 고기량을 조금 줄이고, 추가로 쌈채소를 요구하는 고객에게는 돈을 더 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칼국수집을 하는 B식당도 밀가루값 급등으로 지난 4월 가격을 1000원 올렸지만, 이 것만으로 타산을 맞출 수 없어 최근에는 국수량을 조금 줄이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

각종 원재료 가격이 폭등하자 가격을 올리는 대신 재료를 줄이거나 구성을 바꿔 고물가에 대응하는 식당들이 늘고 있다.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이 공산품을 넘어 외식업계로 전이된 것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들다'라는 뜻의 'shrink'와 '전반·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inflation'의 합성어로, 제품의 가격은 유지하는 대신 크기와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으로 가격인상 효과를 거두려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wnsizing)'이라고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격이 같더라도 양이나 중량이 줄어 단위 중량당 가격이 상승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품가격이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슈링크플레이션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가격상승을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숨겨진 인플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이 수법은 주로 공산품에서 사용한다. 과자가 부서지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과자봉지에 채워 넣은 질소가 실제 들어있는 과자의 양보다 더 많게 하는 '질소 과자'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현상이 외식업계로 번진 것은 최근 들어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자재가격이 폭등하자 고육지책으로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일부 식당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한식당 등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서민들이 주로 찾는 백반집, 김밥전문점 등으로도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당장 외식비가 오른 것 보다는 낫지만 기존과는 다른 '변심한 음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식당도 고물가로 힘든 걸 알기에 반찬 가짓수나 양이 줄어든 것은 이해하지만 그나마 있는 반찬도 손이 안 가는 것들이 나오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외식업계는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손님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슈링크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저렴한 식재료로 바꾸고 있지만, 이런 현상이 소비자의 외면을 불러오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과연 맞는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는 입장이다.

모두 맞는 얘기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는 제품의 양이 달라지는 것 보다 가격이 변하는 데 더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환상에 불과할 뿐 장기화되면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소비자가 등을 돌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딜레마다. 당장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저항을 낮추려는 것이 '불신'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면 어찌할 건가. 소비자 평가가 중요한 시대에 판단을 한 번 잘못하면 영원히 설 땅이 없어질지 모른다. 현대 소비자들은 조금의 변화에도 반응할 정도로 똑똑하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