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10.01 00:05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무심결에도 머리 때리면 절대 안 돼…수업 자료 시각화 해 제공해줬으면"

정재은 씨. (사진제공=정재은)
정재은 씨. (사진제공=정재은)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청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수행하면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주부이자 강사, 미술치료사인 동시에 장애인가족 상담사라는 '1인 다역'을 맡아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정재은 씨(54세)와 지난 30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정재은 씨는 대구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인 배석진·배석민 학생은 청각장애인이다. 정 씨는 두 아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남편과 함께 온갖 고통을 겪어왔다. 이제 숱한 고비를 넘기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큰 아들인 배석진 학생은 현재 대학교 1학년생이고 동생인 배석민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학업에 몰두 중이다.

정재은 씨는 자신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봉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아래는 정재은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발달장애인들과 만든 달력 작품 앞에서 정재은 씨가 밝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발달장애인들과 만든 달력 작품 앞에서 정재은 씨가 밝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애초 청각장애인 봉사활동을 하려고 마음 먹게 된 동기는.

"아들의 청각장애 진단을 받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청각장애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인공와우 수술이 어떤 것인지조차 알려주는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서울로 올라와 강남으로, 종로로, 귀로 유명한 병원은 다 찾아다녔다. 

수술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던데다 수술후 관리, 보장구 유지관리 문제, 재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도 힘든 때였다. 두 아이가 양측 심도난청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인공와우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서울과 대구에서 수술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싣자 이를 보고 청각장애진단을 받은 아기 엄마들 한테 연락이 많이 왔다. 그래서 전화상담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집에 초대도 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누게 됐다. 

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참 어려움이 많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아이를 학교에 적응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학교에서 학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학교도서관 명예관장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정보도 얻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바로바로 담임선생님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특수교사는 말 잘하는 청각장애인은 처음 본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우리 아들을 장애 특성에서 오는 관점의 차이로 보지 않고 아이의 잘못만을 추궁하더라. 저학년 통합담임은 우리 아들처럼 중증 아이는 처음 대한다며 피곤해 했다. 고학년 담임은 '영재반 수학문제를 잘풀었다'면서 머리가 좋아서 말을 못 듣는 척 행동을 하는 문제아로 평가했다. 같은 아이를 두고 관점이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만 올바르게 갖고 있었어도 훨씬 행복한 학교생활이 되었을 것이라고 깨닫게 됐다. 큰 아이가 5학년이 되던 해인 2014년 대구대에서 장애인 부모 상담사 양성과정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상담공부를 하면서 자존감도 찾게 됐다.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던 중에 2016년 상담해주던 내담자가 청각장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어찌나 걱정이 태산이던지 유치원 교사들을  대상으로 처음 교육을 실시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부모의 눈에서 눈물나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계속하게 됐다."

정재은 씨가 '날아라 달팽이 1기와 2기 학생들'과 맨토-맨티 공익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 씨가 '날아라 달팽이 1기와 2기 학생들'과 멘토-멘티 공익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 그동안 청각장애인을 위한 대표적인 봉사활동을 소개한다면.

"무엇보다 청각장애인 학생 멘토·멘티 동아리인 '날아라 달팽이' 팀들과 함께 한 투명마스크 만들기 봉사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립뷰마스크를 대전에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 내가 대구에서 다양한 공익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중 '날아라 달팽이'는 청각장애인 학생 멘티와 비장애인 대학생 멘토로 구성된 동아리다. 멘티가 좋아하는 활동을 공유하고 지지해 주며 새로운 직업체험도 하고 진로 코칭도 하는 모임이다. 

형, 동생들과 함께 즐겁게 기차여행 기분도 내고 대전 청각장애인생애지원센터에 하는 '립뷰마스크 제작 및 배포 프로젝트' 에 참여해 한땀 한땀 립뷰마스크를 만들고 또 직접 특수교육청에 전달도 하는 경험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 하루 8시간씩 3일 이상 참여한 멘티도 있었다. KTX를 처음 타본다는 학생이 있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웃음이 사라지지 않더라. 올해는 동아리 활동을 한 청각장애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재은 씨가 '장애이해 교육'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 씨가 입 모양 도구를 활용해 '장애 이해 교육'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청각장애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이다보니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복지혜택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두 가지를 꼭 말하고 싶다. 첫 번째는 '청각보조기기 급여 확대'이다. 현재 보청기는 5년마다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으나, 보청기로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 기기를 착용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수술을 받아 큰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비용의 부담으로 수술을 받지 못하거나 노후화된 기기를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다.

큰아들이 수술 받은 2005년부터 인공와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돼 수술비의 80%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편측 귀를 수술받을 경우 앞으로 보청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양측 귀 모두를 수술하고 싶어도 성인은 평생 1세트(내·외부) 인정, 분실 및 파손시 외부장치 추가만 인정되는데 편측 귀만 지원해줘 소리를 듣는데 한계를 겪게 된다. 청각장애 인구의 80% 이상은 50대 이상에 해당되지만, 현재 19세 미만에게만 양측 귀 수술 시 건강보험이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경제활동인구인 청년과 중장년도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양측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적용대상 연령을 점차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예산을 아끼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다. 우리 사회는 참 빠르게 움직이고 돌아간다. 의사소통 또한 마찬가지로 시간이 중요하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제대로 듣지 못해 대화의 흐름에 놓치게 된다면 세상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다행히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농인은 전국에 200여개 수어통역센터가 설치·운영돼 언제 어디서든 수어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반면 수어를 모르는 청각장애인은 도움을 받을 기회가 없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시에서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문자통역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교육·구직·문화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속기사가 실시간으로 문자통역을 제공해주는 서비스로 만족도가 높으나, 1시간에 약 1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청각장애인 개인이 이용하기에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상 문자통역의 필요성은 법적으로 명문화돼 있으나, 장애인복지법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방이양사업으로 중앙정부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일부 지자체는 조례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만, 예산이 수반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어통역이 필요로 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어통역센터가 존재하는 것처럼 문자통역을 절실히 기다리는 청각장애인의 복지가 확대되길 기대한다."

정재은 씨가 청각보조공학기기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유트브 생방송 교사연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 씨가 청각보조공학기기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유트브 생방송 교사연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의료·기술 분야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보청기와 달리 인공와우는 단 한번 지원을 받으면 내구연한 없이 자비로 구매를 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약 1000만원에 달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오래된 기기를 사용하거나, 분실 또는 고장이 날 경우 소리를 듣는 것을 포기하는 일도 발생한다. 

해외에서는 보청기와 같이 3년, 5년 또는 10년마다 내구연한을 설정해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필수품인 스마트폰은 시간이 흐르면 성능 좋은 기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인공와우는 출시한 이래 가격이 하락한 적이 없다. 그나마 차상위·저소득 가정은 많은 단체에서 제공하는 수술비 지원이나 기기 교체, 치료비 지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가정은 장애인이 2명 이상이라도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다. 일반가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조공학기기 지원 등 장애학생 지원에서도 일반소득가정의 청각장애인은 항상 열외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형평성 있게 지원을 해주었으면 한다."

발달장애인 미술치료의 여러 장면. (사진제공=정재은 씨)
발달장애인 미술치료의 여러 장면. (사진제공=정재은 씨)

-청각장애인에 대해 비장애인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장애이다 보니 오해를 받는 경우가 너무 많다. 말을 잘하면 잘 듣는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잘하면 머리가 좋아서 못 듣는척 한다고 하고, 잘 알아듣지 못해서 행동하지 못하는데 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오해한다. 다른 장애는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아 장애특성으로 인식하는 반면, 청각장애는 장애특성으로 공감을 하지 못하고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로만 치부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 

청각장애인은 우연적인 정보가 부족하다. 즉, 집중하지 않으면 주변에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회적인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사회적인 기술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면 상황에서는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청각장애인들도 소음 상황, 방송 소리, 온라인 상황에서는 듣기 어려운 처지에 봉착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수가 모인 경우라면 더욱 듣기 어렵다. 

사회생활을 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 자막어플을 사용해주는 에티켓도 필요하다. 또한 청각장애인 교원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올바른 편의지원 제공을 통해 이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교육연수, 회의 등을 실시할 때 나중에 자료를 제공하기보다는 생생한 현장을 함께 체감하고 함께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문화가 되기를 바란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듣기로 인한 결손으로 사회적으로 소외가 되는 청각장애인들의 고충을 바로 알아주었으면 한다."

정재은 씨가 장애학생통합학교에서 교사대상 인권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 씨가 장애학생통합학교에서 교사대상 인권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청각장애인이나 그들의 부모 및 장애인 돌봄 관련 기관들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점은.

"장애 인식 강사로 활동을 하다보니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들이나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청각장애 아이들이 발화를 못해도, 잘 듣지 못하는 경우라도 홀대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머리를 때리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이다. 보청기를 착용한 경우나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라도 충격에 의한 돌발성 청각장애가 올 수도 있고, 인공와우시술을 받은 경우 머리에 충격을 주는 것은 무심결이라도 절대 하면 안될 것이다. 

보장구는 비장애인의 귀와 동일하게 생각하고 부모의 동의없이 머리에서 임의로 분리하면 안 된다. 고가의 인공와우는 분실위험이 있어서 자칫 분리했다가 잘못 착용할 경우 분실위험도 있지만 소리를 옳게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이 24시간 소리를 듣고 있는 개념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발화가 부족하다고 해서 ○○교육기관 학폭사건 조사 중에 종사자가 '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뭘 전달할 수 있느냐'고 말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능력이 부족해도 듣고 보고 느낀다. 수어도 있고 몸짓, 눈빛, 필담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든 인권침해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반드시 수업에 필요한 자료는 필요 정도에 따라 시각화 해 제공해주면 좋겠다. 설명만 잘 해준다면 무엇이든 훌륭하게 해낼수 있다. 진정한 포용은 상대에게 필요한 편의제공에서 시작된다."

정재은 씨가 시민대상 청각장애 이해교육에 참여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 씨(앞줄 왼쪽 세 번째)는 시민대상 청각장애 이해교육에도 참여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본인 소개를 해달라. 

"결혼 전에는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쳤고, 결혼 후에는 청각장애 아이를 만난 후 청각장애 통합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원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장애인가족들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사회복지학과 행정학사 과정을 마치고 발달장애인 미술치료, 장애인가족상담사, 한국장애인 고용공단 직장내 장애인식 개선 강사, 한국장애인개발원 사회적인식개선 전문강사, 공공후견인, 인권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익활동을 통해 청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양육에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함께 듣기도 하고 각종 동아리 활동 정보공유도 하고 소통하는 공익활동가로 뛰고 있다. 아울러 전국학부모정책 모니터단에도 참여하는 등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어디든지 달려가 참여하고 있다. 

올해 대구가톨릭대학교 의료보건산업대학원 언어청각치료학과에서 청각학 공부를 마치고 이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서 주관하는 '2022년 인공지능 학습용 청각장애인 음성데이터 구축사업'에 연구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인공지능 음성인식률 향상 및 청각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실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10대부터 70대 청각장애인분들이 많이 참여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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