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2.10.02 12:00

해외 빠져나간 수상한 외환거래 10조…'론스타 악몽' 모피아 책임론 모면 난망

이재근(왼쪽부터)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권준학 NH농협은행장. (사진제공=각 사)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907억4000만원. 5년여간 은행권 임직원이 횡령한 금액이다. '내부통제 책임론'이 불거진 국내 5대 은행장들이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이유기도 하다. 이번 정무위원회 국감장에서 횡령 등 금융사고의 책임 소재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는 오는 6일 금융위원회를 시작으로, 11일 금융감독원, 17일 신용보증기금·한국자산관리공사·주택금융공사, 20일 예금보험공사·KDB산업은행·IBK기업은행·서민금융진흥원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정무위 국감은 24일 종합감사까지 총 21일간 치뤄지게 된다.

◆'700억대 횡령'·'10조 이상 외환거래'…금융권 현안 산적

국회 정무위는 오는 11일 열리는 금융감독원 국정감사 증인으로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권준학 NH농협은행장 등을 채택했다. 

의원들은 은행권에서 발생한 횡령과 이상외환거래 등 금융사고와 관련 은행장들의 내부통제 관리 운영 책임을 물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한 은행 직원이 700억원대 횡령을 저질렀지만 8년여간 은행과 감독당국이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내부통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 바 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8개월간 은행권에서 발생한 횡령 금액 규모는 907억4010만원, 횡령 직원 수는 97명으로 나타났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 1억3080만원(8명) ▲신한은행 5억6840만원(14명) ▲하나은행 69억9540만원(18명) ▲우리은행 716억5710만원(9명) ▲NH농협은행 29억180만원(15명) ▲IBK기업은행 29억2660만원(10명) ▲SC제일은행 13억3180만원(8명) 등이다.

이에 정무위는 5대 은행장에게 횡령, 유용, 배임 등 은행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와 내부통제 강화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 여부를 따져 물을 방침이다.

이상 외환거래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국내 은행을 거쳐 해외로 송금된 수상한 외환 거래에 전 은행권이 연루됐고, 규모도 72억2000만달러(약 10조1000억원)로 상당하기 때문이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이상 외환거래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검사 결과 송금 규모는 신한은행이 23억6000만달러로 가장 많았다. 이어 우리은행(16억2000만달러), 하나은행(10억8000만달러), KB국민은행(7억5000만달러), NH농협은행(6억4000만달러), SC제일은행(3억2000만달러), IBK기업은행(3억달러) 등 순이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6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이상 해외송금 의심거래 사실을 보고받고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이후 전 은행을 대상으로 관련 자체 점검을 실시하도록 했으며 지난달 말 검사를 진행했다.

1997년 정림건축이 설계한 한국외환은행 본점. (사진제공=정림건축)

◆론스타 얽힌 경제관료들…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도 증인 채택

최근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론스타 사태' 역시 주요 쟁점이다.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물어줘야 할 금액이 3000억원 가량으로 적지 않은데다, 현 정부 경제수장들이 연결돼 있어 야당의 공세 대상이 될 전망이다.

정무위는 오는 6일 열리는 금융위 국감 증인으로 외환은행 인수를 진두지휘했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우리 정부를 대표해 론스타와의 소송을 맡아온 김갑유 법무법인 피터엔김 대표를 증인으로 불렀다. 김건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와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론스타 사태'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에 인수한 뒤 2012년 1월 하나은행에 되팔아 4조원을 웃도는 차익을 챙기면서 불거졌다. 

지난달 31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2900억원)과 이자 약 185억원 등 31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앞서 론스타는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2012년 11월 우리 정부의 외환은행 매각승인 지연과 국세청의 잘못된 과세로 손해를 봤다며 ICSID에 중재신청서를 제출했다. 손해배상금으로는 46억7950만달러(약 6조2800억원)을 청구했다.

법무부는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취소신청 절차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야당 측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정부 경제수장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관련 승인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도 '론스타 사태'가 국감에 재소환된 이유로 거론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재정경제부 은행제도 과장으로 근무했다. 2011년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협상 당시에는 금융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당시 금융위 사무처장으로 금융위와 관련된 각종 사안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위 부위원장 재직 당시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여부를 제때 판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2003년 당시 우리나라 은행법은 비금융 부분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인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주식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했지만, 금융당국은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이 8% 미만인 부실 은행으로 분류되자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라는 예외 규정을 만들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등 5대 금융그룹 회장들은 국감 기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하고,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진행할 계획이다. 연차총회 일정이 국감 기간과 겹치면서 증인 채택은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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