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2.10.05 11:57
고(故) 김동길 명예교수. (사진=김동길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이게 뭡니까. 이제 더 이상 바른 말을 듣지 못하게 됐다니 아쉽네요."

평생 직언(直言)으로 살아 온 보수진영의 논객이자 원로인 김동길 연세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나온 반응들이다.

고인은 지난 2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했지만, 3월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세브란스병원 입원 뒤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못하고 지난 4일 오후 10시 30분께 숨을 거뒀다. 향년 94세.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직전 잠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 각각 사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대학 교단에 섰다.

대학 교수로 평생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세상에 맞선 바른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특히 불의(不義)를 보면 참지 못했다. 사회운동·현실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며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한 내용은 그야말로 '직구'였다.

이로 인한 시련도 많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고,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대학에서 두 차례 해직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직 기간 중 그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에세이, 신문 칼럼 집필과 강연으로 대중과 친숙해지며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나비넥타이와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갈하는 "이게 뭡니까"라는 그의 말이 유행어가 됐다. 그가 남긴 100권 안팎의 저서도 세인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1984년 복직한 이후 민주화운동과 거리를 둔 고인은 1991년 강의 도중 강경대 치사사건에 대해 "그를 열사라고 부르지 말라"고 언급을 했다가 학생들 반발에 강단을 떠났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새 정치를 주장하는 '태평양시대위원회'를 창립하고 한때 대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1992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해 대통령 후보를 양보한 뒤 14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 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4년 신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합류해 정치활동을 계속하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개국 이후 정확한 언변, 정연한 논리와 유머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았고, 구순을 넘긴 2019년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를 개설해 지난해까지 운영했다. 올해 초에는 안철수 대통령 후보 후원회장을 맡았고 "포기할 줄 아는 아량을 가진 사람만이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 때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세상이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여겨졌을 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등 세상의 가치를 묵직하게 설파해 온 고인의 발자취는 당분간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시신을 연세대에 기증하고, 자신이 살아 온 자택은 이화여대에 기부하는 등 마지막 페이지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사회에 남기고 떠난 고인의 영전에 다시 한 번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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