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11.16 06:00

비전 선포 3년 반 지났지만 성과 미미…초미세공정 승기 잡아야

지난해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세바스찬 승(왼쪽 두 번째) 소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등을 하겠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당시 부회장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직접 발표했다. 압도적 1위인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앞세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왕좌에 앉아 글로벌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는 계획이다.

비전 선포 3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목표에 얼마나 다가갔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업계 1위인 대만 TSMC와 시장 점유율 격차가 아직 크다. 추격을 위해 고삐를 바짝 죄어야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사진제공=삼성전자)

◆진전 없는 '비전 2030'…점유율 격차 여전히 36.9%포인트

반도체 시장은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분류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 D램, 낸드플래시 등을 뜻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는 분야다.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연산·논리 작업 등 정보처리를 담당한다.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컴퓨터용 중앙처리장치(CPU) 등이 대표적인 시스템 반도체다. 이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분야를 '펩리스', 위탁생산하는 분야를 '파운드리'라 부른다. 

삼성전자가 장기 집권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보다 시장 규모가 작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 시황 변동에 따라 매출이 요동치기에 '천수답(빗물에 의지해 경작하는 논)'식 사업이란 말도 나온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디지털 대전환에 맞춰 꾸준히 성장할 신성장동력이란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주도권을 쥐고 나면 글로벌 반도체 경기에 따라 울고 웃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 반도체 산업을 좌우할 압도적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도 '초격차'를 중시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야심차게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은 아직 큰 걸음을 내딛지 못 하고 있다. TSMC와의 시장 점유율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시장 점유율은 53.4%로, 2위 삼성전자(16.5%)보다 36.9%포인트 높았다. TSMC가 전 분기 대비 0.2%포인트 하락했고, 삼성전자가 전 분기 대비 0.2%포인트 상승했지만, 1위를 목표로 한 삼성전자 입장에선 만족하기 어렵다. 

시장 점유율을 키우려면 더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투자 규모도 TSMC가 앞서는 형국이다.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 400억~440억달러(약 51조~56조원)를 투입했고, 내년에도 4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삼성전자가 올해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를 모두 합친 반도체 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47조7000억원 수준이다.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관계자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관계자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기술 초격차'가 해답…2027년 1.4나노 공정 도입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결국 기술력에서 앞서야 TSMC를 제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선단 공정을 선제 도입해 빠르게 관련 시장을 선점하는 것만이 후발주자가 격차를 좁힐 방법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보다 칩 면적과 소비전력은 줄이면서 성능은 높인 신기술이다. 트렌지스터에서 전류가 흐르는 곳이 3개면 뿐인 핀펫 기술과 달리 모든 면에서 전류가 흘러 데이터 처리 속도를 대폭 향상시키고, 전력 효율도 높였다.

반면 TSMC는 지난 7월 3나노 양산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9월로 미뤘고, 최근 또다시 연기를 선언했다. TSMC가 11월 내에 양산을 시작한다고 해도 삼성전자가 5개월 더 앞서간 셈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TSMC가 3나노 공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TSMC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수율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3나노 공정은 이전 세대인 5나노 공정보다 집적소자 밀도가 50% 증가해 더 많은 비용과 높은 공정 기술 난이도가 요구된다.

TSMC가 3나노 양산 계획을 연거푸 미루는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차세대 반도체를 원하는 고객사를 먼저 확보할 수 있다면, 본격적인 추격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은 고객사 확보가 기업 경쟁력과 점유율 확대로 이어진다.

삼성전자도 최근 기술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2'에서 GAA 기반 공정 기술 혁신을 지속해 2025년에는 2나노,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을 차례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TSMC도 2나노와 1.4나노 공정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산 시기 등 구체적 내용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TSMC보다 앞서 2나노 이하 고객사를 확보하면 TSMC를 추월할 동력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당시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은 파운드리 청사진을 공개하며 "고객의 성공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존재 이유다.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파트너로서 파운드리 산업의 새로운 기준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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