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04.05 12:00
한수원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28일(현지시간) 체코전력공사(CEZ)에 체코 신규원전사업 입찰서를 제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수원)
한수원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28일(현지시간) 체코전력공사(CEZ)에 체코 신규원전사업 입찰서를 제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수원)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미국이 한국형 원전의 독자적 수출에 잇달아 제동을 걸면서 원전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의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지난해 10월 미국 컬럼비아 특구 연방지방법원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수출을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최근에는 체코에 대한 수출도 미국 정부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국형 원전의 독자 수출 가능 여부를 두고 웨스팅하우스와 소송에 휘말린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을 규정에 따라 미국 정부에 미리 신고했으나 이 마저도 반려하면서 한미 원전동맹 마저 삐걱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수원은 특정 원전 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해 외국에 이전할 경우 미국 에너지부 허가를 받거나 신고할 의무를 부과한 미국 연방 규정 제10장 제810절 규정에 따라 지난해 12월 23일 미국 에너지부에 한수원의 체코 원전 사업 입찰과 관련한 정보를 제출했지만 이 서류가 반려됐다.

810절에 따르면 체코는 미국이 원전 수출을 일반적으로 허가한 국가 중 하나로 원전을 수출하고자 하는 기업은 관련 활동 개시 30일 이내에 미국 에너지부에 신고만 하면 된다. 이에 따라 에너지부가 한수원의 신고를 수리하면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 소송과 관련 없이 체코에 원전을 수출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에너지부는 지난 1월 19일 한수원에 보낸 답신에서 "810절에 따른 에너지부 신고는 미국인이나 미국법인이 제출해야 한다"며 신고를 반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국의 수출통제를 이행할 의무는 미국 기술을 미국 밖으로 가지고 나간 미국 기업에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인 한수원은 신고할 주체가 아니라는 뜻으로, 결국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신고해야 받아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건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자로가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와 자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형 원자로는 웨스팅하우스가 지난 2000년 인수한 미국 컴버스천 엔지어니링의 원자로 '시스템 80'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것을 빌미로 잡은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소송과 에너지부의 신고서 반려는 최근 해외 원전 수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우리 원전 기업을 견제하고, 미국과의 공동수주를 압박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에너지부와 웨스팅하우스의 이런 움직임이 한미 간에 또 다른 통상마찰의 요인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정상회담에서 제3국 원전 시장 진출 등 원자력 협력을 강화하는 '원전동맹'을 공식화했지만 1년도 안 돼 균열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더욱 큰 걱정은 만약 에너지부가 한국형 원전 수출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미국 법원이 웨스팅하우스의 손을 들어줄 경우 체코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쏟아질 원전 수출 길도 함께 막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한 윤석열 정부의 원전 수출전략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원전 수출 드라이브를 걸기 전에 미국과의 협력 강화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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