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5.17 09:17
현대제철이 전기로를 사용해 자동차용 강판 등 고급 철강재를 생산하고 있다. 전기료 인상으로 전기로를 이용하는 철강업체들에게는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제공=현대제철)
현대제철이 전기로를 사용해 자동차용 강판 등 고급 철강재를 생산하고 있다. 전기료 인상으로 전기로를 이용하는 철강업체들에게는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제공=현대제철)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산업, 유통업계가 전기료 인상에 따른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기 소비가 많은 철강‧반도체‧석유화학 업종은 고정비 부담을 덜어낼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전기차 제조사들은 충전비용 급등을 보완할 신규 서비스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단축 영업 확대와 전력 절감기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식품외식업계는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고 있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부터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8원, 도시가스 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 인상했다. 인상률은 각각 5.3%다. 전기요금은 앞서 올해 1분기 ㎾h당 13.1원으로 역대 최대폭으로 인상된 바 있다. 2분기에도 다시 한번 인상돼 올해 상반기에만 ㎾h당 21.1원이 올랐다.

◆반도체‧철강‧석유화학, 가격도 못 올리고 ‘끙끙’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이자 수출 주력산업은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국내 전력 소비량 1위인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전기·가스비 등 유틸리티 비용이 전년보다 30.2% 상승한 3조7795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전력 소비량 2위인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기간 동력 및 수도광열비가 1조5621억원으로 전년보다 26.1%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 양사가 추가로 지불해야 할 고정비가 연간으로 각각 1500억원, 8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양사는 글로벌 시장의 반도체 한파로 인해 올해 1분기 합산 8조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고정 비용이 급등하면서 적자 폭이 확대될 수 있다. 더욱이 메모리 반도체 D램 가격까지 내려가는 추세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2분기 메모리 반도체 D램 가격이 1분기보다 13~18% 떨어질 것으로 예견했다.

전기 사용이 많은 철강업계도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전기요금은 철강제품 원가의 10% 안팎으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기로 가동 규모가 국내 최대인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해 전력비 및 연료비가 전년 대비 11.9% 늘어난 2조4296억원을 기록했다. 그해 현대제철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조61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9% 급락했다.

전기요금 인상분을 제품가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지난 12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기요금 인상은 원가절감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주요 수요처인 건설업계는 최근 경기 침체로 철강 소비가 현격히 줄어드는 중이다. 

전기 사용이 많은 석유화학업계는 공장 가동률을 지금보다 더 낮추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지난해 수도광열비가 전년보다 23.4% 늘어난 459억원을 기록했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철강업계와 마찬가지로 제품 수요가 크게 떨어지면서 제품가 인상이 언감생심이다. 롯데케미칼 등을 비롯해 국내 석유화학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부터 70~8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 CU는 전력 절감을 위해 완전 밀폐형 냉장고 시범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사진제공=CU)
편의점 CU는 전력 절감을 위해 완전 밀폐형 냉장고 시범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사진제공=CU)

◆유통업계, 밀폐형 냉장고 도입하고 영업시간도 줄여

유통업계는 전기료 인상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예견된 만큼, 저마다 자구책을 마련해 고정비 충격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우선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은 전력 절감 장치 마련과 운영시간 단축 등을 내놓았다.

편의점 CU는 완전 밀폐형 냉장고 매장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다. 해당 사업은 아직 시범 단계지만, 밀폐형 냉장고를 설치한 일부 매장은 한 달 동안 일평균 전력 소모량이 기존 냉장고보다 약 63% 줄어든 효과를 확인했다. 세븐일레븐은 일출·일몰 시간을 탐지해 자동으로 간판이 켜지거나 꺼지는 통합관제시스템 시범운영을 확대하고, 전기설비를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해 전력 절감에 나선다.

이마트는 매장 온도와 조명 등 시설 표준 운영을 일부 변경해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매장 간접 조명을 50%, 스팟 조명을 30% 줄였다. 여기에 출입문 에어커튼 절전과 자판기 등 전열 콘센트 소등 타이머 설치, 야간 소등 등 전력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총동원하고 있다. 롯데마트도 연내 72개 주요 점포에 냉장고 문을 설치할 계획이다. 교체 작업이 완료되면 연간 1만5000MWh(메가와트시) 상당의 전력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홈플러스는 전국 24개 매장의 영업종료를 오후 11시에서 오후 10시까지로 조정했다. 야간 이용 고객들이 많지 않아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해 전기요금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마트 역시 지난달부터 시작한 일부 매장의 영업 종료시간 단축을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자구책이 효과를 보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롯데쇼핑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수도광열비는 925억원으로 직전 분기 742억원보다 24.65% 증가했다. 신세계 역시 1분기 수도광열비가 257억원으로 직전 분기 204억원보다 26.17% 늘어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당국이 에너지 절약 지원책을 지금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며 “다양한 인센티브 마련 등 실효성 있는 정책들이 뒷받침돼야 유통업계의 고정비 부담이 실질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마트 직원이 상품 매대를 정비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마트)
이마트 직원이 상품 매대를 정비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마트)

◆식품외식업계, 가격인상 압박 최고조…“정부의 당근책 필요”

식품외식업계는 이번 전기료‧가스료 인상을 상쇄할 방안으로 가격인상을 우선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요금 인상과 함께 식재료 가격까지 치솟은 상황이라 제품가격 인상 압박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국내 밀가루 제품 가격은 1월 21.7%, 2월 22.3%, 3월 19.8%, 4월 19.2%로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세다. 올해 1분기 닭고기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7% 올랐다. 최근에는 구제역 확산 조짐까지 보여 한우 가격 급등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설탕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 ICE선물거래소에서 설탕의 원료인 원당 가격은 올해에만 약 35% 치솟았다. 설탕가격 인상은 가공식품 인상으로 직결된다. 시장에서는 올해 이상 기온 영향으로 설탕가격 인상이 심화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다만 정부 당국이 물가안정 차원에서 식품외식업계에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한 만큼, 절충안 마련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지난 3월 CJ제일제당은 고추장·조미료·면류 제품 등의 가격을 최대 11.6% 인상하겠다고 밝혔다가 인상안을 철회했다. 풀무원도 생수 가격 5% 인상 계획을 보류한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 인상을 압박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당근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가격 인상을 막을 명분이 없다”며 “식품원료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폭을 넓히고 의제매입세액 공제한도를 상향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외식물가는 29개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매달 인상되는 중이다. 이 기간 햄버거는 27%, 피자는 24% 올라 가격 인상 폭이 가장 높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 지수는 117.15로 전달보다 0.7% 상승했다. 품목별로 햄버거(27.8%), 피자(24.3%), 김밥(23.2%), 갈비탕(22.5%), 라면(21.2%) 등의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자장면(21.0%), 생선회(20.4%), 떡볶이(19.9%) 등도 20% 안팎의 상승률이다.

현대자동차의 첫 번째 전용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 주행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첫 번째 전용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 주행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충전요금도 인상 불가피…전기차 구매 매력도 '뚝' 

전기차 충전요금 인상도 초읽기에 몰렸다. 환경부 공공충전기 요금을 기준으로 급속충전기(50㎾)는 324.4원/㎾h, 초급속충전기(100㎾ 이상)는 347.2원/㎾h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인상된 요금이며, 당시 전기차 충전요금 특례 할인 종료와 전기요금 인상을 반영하면서 약 40원(초급속충전기 기준)이 올랐다. 만약 이번에 추가 인상이 이뤄지면 초급속충전기 요금은 400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의 경우, 77.4㎾h의 배터리 탑재에 평균 복합 전비는 4.8km/㎾h 수준이다. 만약 월 1000㎞를 주행한다면 필요한 전력량은 208㎾h가 필요하다. 현 요금 기준으로 급속충전에 약 8만원 정도가 들지만, 충전비 인상 이후에는 1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같은 조건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의 연료 유지비와 전기차 연료 유지비가 동일해졌음을 의미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유지비가 내연기관차와 큰 차이가 없다면 전기차 구매 매력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일부 수입차 브랜드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전기차 충전서비스를 기존보다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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