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05.21 08:00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경기침체 속에서도 공격적인 투자로 해외 영토 확장을 꾀하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을 위해 연이어 북미에 합작공장(JV)을 세우고 있어 주목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해 북미를 중심으로 완성차 업체들과 빠르게 합작법인(JV)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는 사업 초기 단독으로 해외에 진출하던 것과 달라진 행보다.

배터리 업계가 완성차 업체와 합작사 설립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와의 이해관계가 접합되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배터리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처가 필요하다. 배터리 업체의 경우는 수주 물량을 선점하고, 공장 건설비 등을 분담해 투자비 부담을 현격히 줄일 수 있어 상호협력관계가 구축된다. JV는 대부분 정책 자금이나 파트너와의 에쿼티(자기자본) 등으로 가능해 배터리 기업의 부담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배터리 3사는 합작법인 형태로 특히 북미 영토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3사의 총 생산능력을 61.5GWh로, 전기차 92만2500대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국내 3사 중 북미에 가장 많은(7개)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애리조나 단독공장을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 합작공장(오하이오·테네시·미시간)을 가동하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일본 혼다, 스텔란티스와도 합작해 미국 내 생산능력을 250GWh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전까지 헝가리 괴드 공장을 중심으로 유럽 완성차 업체들에 배터리를 공급해 왔던 삼성SDI는 지난달 25일 GM과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약 30억달러(약 4조80억원) 이상을 투자해 연산 30GWh 이상 규모의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해 5월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25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짓고, 2025년 1분기부터 가동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SK온은 포드와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공장 3곳(테네시·켄터키)을 총 129GWh 규모로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또 현대차그룹과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연간 35GWh 규모(전기차 약 30만 대 분)의 합작공장을 건설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2020년 충남 서산시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을 방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기아 '니로EV'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2020년 충남 서산시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을 방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기아 '니로EV'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배터리 업계의 북미 영토 확장 행보는 IRA 시행에 따른 보조금 수혜를 받기 위해서다. IRA의 AMPC(현지생산세액공제)는 미국 내에서 생산 및 판매한 배터리 셀·모듈에 일정액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셀 기준 kWh당 35달러, 모듈 기준 kWh당 10달러를 지급한다.

북미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핵심 광물을 추출·가공하는 등 조건을 충족하면 차량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가격인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미국 에너지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IRA 관련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 모델 22개 중 17개는 국내 배터리 기업의 배터리를 탑재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의 E-트랜짓, 머스탱 마하-E, 링컨 에비에이터, 크라이슬러 파시피카 등에 배터리를 장착,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을 탑재하는 포드 E-트랜짓 외 10개 차종으로 7500달러 보조금을 받는다. 삼성SDI의 배터리를 사용하는 지프의 그랜드체로키와 랭글러, 포드 이스케이프, 링컨 코세어 등에는 보조금 3750달러가 책정됐다. SK온은 포드 F-150 라이트닝 2종에 배터리를 공급해 7500달러의 보조금을 수령한다.

증권업계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북미 내 수주 증설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혜영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IRA 시행으로 최대 7500달러 전기차 보조금 지급에 따라 미국 내 전기차 침투율이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며 "OEM 업체들의 JV 설립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기존 고객사 외 신규 고객사 확보 기대감도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자동차 시장의 15~20%에 달하는 미국 시장 확보는 중장기 성장의 핵심"이라며 "중국 업체들의 미국 진출에 제동이 걸린 시기에, 선제적인 JV 설립 및 생산능력 확대로 미국 내 안정적 점유율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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