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07.10 12:04
(자료제공=대한상공회의소)
(자료제공=대한상공회의소)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국민소득이 높고 잘 사는 나라가 기부를 많이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소득이 적어도 강한 공동체 의식, 정부의 적극적인 장려책 등으로 '있는 사람만 기부한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완전히 깬 의외의 결과가 나오고 있어서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모르는 사람 돕기, 기부 경험 등의 설문 결과를 토대로 지수를 산정해 2010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에 따르면 2022년 세계기부지수 순위 톱10에는 미국(3위)을 제외하고 인도네시아, 케냐, 미얀마, 시에라리온, 잠비아, 우크라이나 등 대부분 중·저소득 국가가 랭크돼 있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에 불과한 인도네시아가 5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기부가 소득 수준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어떨까. 한국의 기부지수는 지난해 119개국 중 88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정점이었던 2021년 조사 대상 119개국 중 111위를 차지한 것에 비하면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하위권이다. 무엇보다 2011년 57위를 기록한 후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볼썽사납다. 기부지수가 수직 하락한 것은 기부 참여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3세 이상 국민의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21년 21.6%로 감소했다.

한국의 기부순위가 이처럼 낮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과 경제적 불평등, 기부에 대한 낮은 인식, 기부금 세제 혜택 축소 등을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무엇보다 선진국과 비교해 열악한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기부문화를 확산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선진국은 재산을 소유하거나 증여하는 것보다 기부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기부액에 비례해 혜택이 큰 게 상식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기부액의 60% 내에서 전액 소득공제를, 프랑스는 기부금의 66%를 세액에서 빼준다. 영국은 '레거시10'이라는 제도를 통해 재산 10%를 기부하면 상속세 등에 혜택을 주는 제도까지 있다. 우리는 어떤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후손인 고(故)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42억원을 해외 대학에 기부했다가 후손들이 뒤늦게 27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았고, 한 재산가가 구호단체에 수백억원을 기부했다가 세금이 절반이 넘어 공분을 샀던 사례 등은 선진국에 비해 기부를 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크게 낙후돼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10일 고액 기부 활성화를 위해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세제 지원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기부금 1000만원 초과분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여 고액 기부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기부금 1000만원까지는 15%를, 1000만원 초과분은 30%를 공제해주고 있는데 100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35%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착한 기부자'에 대해 정부 포상을 늘리고, 공항 출입국 심사 때 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늦은 감은 있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기부문화 확산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혜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기부결정은 개인이 할 일이지만, 기부를 장려하는 시스템 개발은 정부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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