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10.23 16:08
(그래픽=뉴스웍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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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우성숙 기자] 중국이 12월 1일부터 이차전지 핵심 소재 가운데 하나인 흑연을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다. 규제 대상은 고순도·고강도·고밀도의 인조 흑연 재료와 제품, 천연 흑연 재료와 제품이다. 수출을 전면 통제한 건 아니지만 이들 품목을 수출할 경우 중국 상무부에 이어 국무원의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걸림돌이다. 아연 수입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우리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천청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재고물량이 2~3개월치 정도는 있다지만 만약 중국의 수출통제가 장기화할 경우 배터리 생산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흑연은 양극재, 분리막, 전해질과 함께 이차전지 4대 소재인 음극재에 들어가는 핵심 재료다. 특히 흑연의 양과 질이 배터리 용량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무엇보다 안정성은 높은 반면, 가격이 저렴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중국산 흑연을 대체할 수입처가 마땅히 없어 최악의 경우에는 국내 배터리 생산차질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채굴부터 가공·정제까지 중국이 전 과정을 장악하고 있어 대체 수입처를 찾기가 어려워서다. 실제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흑연 채굴량 130만톤 가운데 중국이 65.4%인 85만톤를 차지했다. 여기에 리튬·니켈·코발트 등 다른 배터리 소재 광물의 경우는 중국이 최종 가공자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실제 채굴은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이뤄지는 반면, 흑연은 채굴부터 가공·정제까지 모든 과정을 중국이 핸드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2년 전 요소수 사태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중국이 지난 8월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쓰이는 갈륨·게르마늄에 대한 수출통제로 수입이 한 달 이상 전면 중단된 사례를 생각하면 이번 아연 수출규제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걱정은 중국의 자원무기화가 흑연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에 맞서 다른 광물로도 수출제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세계 시장 1위인 광물은 33종에 이른다. 국내 산업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큰 핵심광물 33종 중 3대 수입국 안에 중국이 포함된 게 25종이나 된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10대 전략 핵심 광물로 지정한 희토류 5종과 리튬·니켈·코발트·망간·흑연 등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는 70~100%에 달한다.

정말 걱정이다. 중국산 핵심 소재의 공급이 끊기면 우리나라의 관련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노력에 속도를 붙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코 현재 상황만 모면하려는 땜질식 대응으로 일관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핵심 광물의 공급망 다변화는 경제안보 차원에서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핵심 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을 통해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아세안·호주·남미 등 광물 보유국들과의 자원개발 사업도 확대해야 한다. 중국과도 허심탄회하게 만나 대화를 나누는 등 외교적 해법도 모색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가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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