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10.25 12:41
(이미지제공=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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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우성숙 기자] 미국에는 12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집중감시하고, 학교나 공원 근처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제시카법'이 있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아동 성폭행 전과자에 의해 9살 소녀 제시카가 강간당한 뒤 살해되자 희생자의 이름을 붙여 제정했다. 현재 미국 42개주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거리 제한(300~610m)은 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법안이 조만간 시행될 듯하다. 법무부가 일명 '한국형 제시카법' 입법 절차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국가 등이 지정한 시설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주목된다.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범이나 3회 이상 성범죄를 저질러 10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성범죄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약물치료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가 이 법안을 마련한 것은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의 25.6%가 13세 미만이며, 재범률이 12.9%에 달하는 등 성폭력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두순, 김근식 등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주거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민원이 폭증하는 등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이들의 거주지를 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했다.

법안을 보면 정부가 위헌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당초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 이후 초·중·고등학교와 어린이집·유치원 등 보육시설 등으로부터 500m 이내에 살지 못하도록 거주를 제한하는 방식을 고려했다가 국가가 정한 시설로 제한하는 것으로 방향을 튼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교육시설이 밀집한 대도시에서 살지 못하게 된 성범죄자가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몰릴 우려가 높고, 이로 인해 도농 간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법안은 내달 법제처 심사를 거친 뒤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입법과정은 물론 거주시설 지정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먼저 헌법에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와 이중처벌 논란으로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 다툼이 예상된다. 실제 법조계 안팎에서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14조를 근거로 들어 위헌 소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또 형사처벌과 전자발찌 부착 처분에 더한 가중 처벌이라는 지적도 팽배하다.

무엇보다 '혐오시설'로 꼽히는 성범죄자 거주시설을 어디에 정할 것인가도 난관이다. 어디가 됐든 인근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결국 누가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는 얘기다.

성범죄자를 관리할 인력 증원도 걸림돌이다. 법안은 고위험 성범죄자 1명당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예산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 증원이 필요한 제도이고, 충원을 위한 예산은 명분이 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조직 확대와 공무원 숫자를 늘리기 위한 꼼수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목소리는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 다만 고위험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고,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고민거리다. 이번 법안의 취지에 대부분의 국민이 공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미리 따져보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이 아동 성범죄 근절에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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