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10.29 00:01
서울의 한 지하철역 출구로 승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기초질서라 할 수 있는 우측통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시선을 끈다. (사진=김다혜기자)
서울의 한 지하철역 출구로 승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기초질서라 할 수 있는 우측통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시선을 끈다. (사진=김다혜기자)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오늘(29일)은 159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서울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되는 날이다. 당시 사고는 좁은 길목에 인파가 몰릴 것을 알고도 당국이 질서를 통제하지 못해 발생한 후진국형 인재였다. 미흡한 안전 관리와 국민 안전 의식 부재가 낳은 비극이었던 것이다. 사고 직후 안전 질서 전반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가안전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1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참사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어는 누구도 "내 탓이오"라며 책임감 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더 이상 이런 참사는 없어야 한다고 여야 모두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인 재난안전법 개정안은 참사 책임론을 둘러싼 공방으로 시간만 보내면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안전사고는 오히려 더 늘었고, 사회 전반의 안전 불감증도 더 커졌다.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사고 구조 건수는 51만4147건에 이른다. 매달 5만7000건이 발생한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사고로 인한 구조 건수는 약 68만건으로 지난해 수준(64만건)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민 안전 불감증도 여전하다. 지하철역 등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우측통행과 같은 기초질서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우후죽순 열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와 방안을 담아야 할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이 없다보니 안전관리를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안전사고가 걱정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 경남 진주 남강유등축제 개막식이나 경남 함안 낙화놀이 등에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아찔한 순간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긴 참사가 있었음에도 안전사고가 더 늘어나고 안전 불감증이 여전한 것은 1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안전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했지만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정부가 내놓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관련 법률안에 대한 처리를 미루고 있어서다. 더 가관인 것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당이 참사 재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를 구성해 최장 1년 9개월간 진상 규명 활동을 벌인다는 내용을 담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이미 이뤄졌는데도 진상 규명만 계속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이슈로 삼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도라면 당장 멈추는 게 옳다. 참사 1년이 지난 지금 국민이 바라는 건 사고를 둘러싼 소모적 정쟁이 아니라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과 안전 확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가안전시스템을 제대로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국민도 달라져야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도 국민들이 원하는 안전한 한국을 만드는 데는 역부족일 수 있다. 끔찍한 사고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우(愚)를 더 이상 범해선 안 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