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11.10 12:10
(자료제공=조세연구)
(자료제공=조세연구)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2대 주주가 정부가 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2월 별세한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족이 상속세를 마련할 현금이 없어 지주회사 NXC의 지분 29.3%를 물납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이러니 "상속 두 세 번만 하면 모든 기업이 국영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가업승계를 어렵게 하는 상속세 부담은 일부 대기업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상속세 과세표준과 세율이 2000년 이후 23년째 그대로인 탓에 서울 시내 아파트의 40%, 수도권 아파트의 13%가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되면서 상속세가 더 이상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게 됐다. 실제 각종 공제 혜택을 감안해도 통상 자녀에게 10억원 이상 물려주면 상속세를 내게 된다. 최근 서울지역의 국민평형 아파트 시가나 분양가가 대부분 10억원을 상회하면서 조만간 아파트 1채만 갖고 있는 모든 중산층이 상속세를 내야하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년 넘게 유지된 상속세 세율과 과세표준 구간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10일 한국조세연구포럼의 학술지 '조세연구' 최신호에 실린 '상속세 세율 및 인적공제에 관한 개선방안 연구' 논문에 따르면 그간의 물가상승과 세 부담 등을 고려해 현생 과세표준 구간을 5개 구간에서 4개 구간으로 개편하고, 상속세 세율도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관계에 따라 차등세율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고세율 적용 구간은 30억원 초과에서 50억원 초과로 높이고,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낮추자는 것이 골자다.

먼저 상속세 과세표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논문에 따르면 2000년 최고세율 적용구간인 30억원을 2021년 가치로 추정하면 48억600만원이며,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로 현재가치를 환산하면 45억원에 해당한다. 최고세율 적용 과세표준 구간의 범위가 넓어졌는데도 23년이 지난 낡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한 지적이다.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최고 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세율(27.1%)보다 약 1.8배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 과세까지 포함하면 60%로 세계 최고로 높아진다. 미국·영국(40%) 등도 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낮다. 최고 세율이 우리보다 높은 일본의 경우도 시가에 근접한 기준으로 상속 재산에 대한 세금을 물리는 한국과는 달리 공시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실제 세 부담은 우리보다 낮다.

누가 얼마를 상속받았는지에 따라 상속세율을 결정하지 않고 사망자가 남긴 유산 총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결정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실제 소득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 조세 원칙에 위배되는데다 출산장려 정책과도 상충된다. 자녀가 많은 집이 누진세율을 적용받아 더 많은 상속세를 내야하는 하는데 누가 아이를 더 낳겠는가.

상속세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부(富)의 지나친 쏠림을 막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있다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불합리한 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상속인들이 세금납부를 위해 빚을 내고, 가업까지 포기하는 사례가 벌어진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고령층 재산이 젊은 세대로 원활하게 이전돼 경제 활력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상속세제에 대한 합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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